고꾸라진 갈매기

〈갈매기의 꿈〉 서평

by 코알라


<갈매기의 꿈>을 십수년 만에 다시 읽어본 이 시간은, 내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번번이 주저앉았던 부끄러운 과거를 꺼내보는 시간이었다. 내 안의 조나단은 멋진 비행을 위해 야심 차게 몸을 내던졌지만 아직까진 그렇다 할 성과가 없는 듯하다.


#. 고꾸라진 갈매기 1
대학생 때 나는 여행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필리핀 마닐라에 현지 가이드를 하러 갔던 경험이 있다.

신입인 나는 돈을 잘 버는 선배 가이드들을 따라다니며 배운 노하우를 토대로 가이드 멘트를 짰다. 정보를 가장한 이 멘트들은 여행 마지막 날 잡혀있는 쇼핑을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에겐 모든 것이 너무 노골적여 보였다. 그래서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이 사람을 속이는 것 같다는 프레임에 갇혀 나오기 힘들었다. 나는 여행객에게 양질의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정작 수익이 나는 쇼핑센터에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제대로 상품을 팔지 못했다. 3박 4일간의 나의 선의가 여행객에겐 영업을 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비추어지는 것 같아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가짐 때문에 당연히 내 실적은 바닥이었다.

내가 불편한 마음을 이겨내고 장사를 열심히 했다면? 아직 필리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고꾸라진 갈매기 2
결혼을 한 후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서울로 출퇴근하기가 힘들어지자 새로운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 낳고도 할 수 있는 기술을 물색하다가 화훼장식기능사가 눈에 들어왔다. 똥손계의 최고 똥 손이 바로 나라 밤낮으로 실기시험 준비를 했음에도 턱걸이로 겨우 자격증을 땄다. 그 후 학원을 두 군데 정도 더 다니며 기술을 익혀 꽃집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취직만 하면 꽃집 사장님에게 스타일을 전수받고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똥 손인 나는 생각과 손이 따로 놀며 사장님께 모진 핍박을 받고 멸시를 당하게 된다. 평일엔 팔리지 못해 폐기할 꽃이 나오면 집으로 고이 모셔가 열심히 연습했다. 휴무날엔 꽃 시장에 나가 꽃과 포장재를 사와 또 밤낮으로 연습을 했지만 똥 손의 벽은 높았다.

실력이 늘지 않아 재능을 탓하고 있는 와중에 임신을 하는 바람에 도망치듯 꽃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곤 꽃 가게 일을 소소하게 도와주는 대가로 일주일에 한 번씩 플로리스트 심화반 수업을 들으며 실력을 쌓았다. 그땐 제법 형태도 그럴싸했고, 포장 실력도 상당히 늘었는데 출산과 함께 다시 꽃 만질 일이 없게 되어버렸다. “너는 똥 손이다.”라고 계속 얘기하는 사장님의 최면에 걸려 넘어져 버린 것이다. 조나단처럼 비난에 굴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했었다면 결말이 달랐을까.

내가 도중에 포기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니, 결국 의도하진 않았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고 그 상태로 머물러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리의 새,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시간을 내서 연습한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내 안의 무한한 갈매기여, 깨어나라! 집에서 살림하며 육아를 하다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내 안의 조나단이 시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이따위 엉망인 글을 쓰고 있지만 이번엔 포기하지 말고 계속 쓰라고, 쓰다 보면 새로운 차원이 열릴 거라고 얘기하는 조나단의 응원소리가 들린다. 비록 내가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게 한계는 없다는 것을 믿고 꾸준히 시간을 쌓아 언젠간 조나단처럼 멋지게 날아오를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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