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 엄마는 봄이면 뒷산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쑥과 냉이를 캐셨다. 그렇게 캔 쑥과 냉이로 쑥국, 쑥덕, 쑥버무리, 냉이무침, 냉이 된장찌개를 만들어 밥상을 차려주셨다. 여름엔 시원한 오이냉국, 열무국수, 비빔면, 닭백숙 등을 주셨던 것 같다. 가을엔 다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뒷산에서 밤과 도토리를 주워오셨다. 밤은 군밤, 찐 밤, 밤밥, 도토리는 도토리묵으로 다시 태어났다. 겨울엔 여름에 강원도 정선에서 뜯어다가 말린 고사리와 가을에 주워온 밤과 도토리가 가끔 밥상 위에 올라왔고, 가스레인지 위엔 늘 대추와 배를 넣고 끓인 차가 놓여있었으며, 묵은지로 만두를 빚어주셨다.
그러던 엄마는 내가 10살, 동생이 8살 되는 해에 반월공단에 있는 한 구내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아빠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집이 경매에 넘어가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식당 일은 자그마치 23년이나 지나서야 끝이 났다.
지금 와서 그 시절을 회상하다 보니 엄마가 노안이 와서 불편했다가 처음 안경을 썼던 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 식당에서 배추 여러 포기를 씻으려고 물속에 담갔는데 그 배추가 물속에서 파아랗게 하늘하늘거리는 게 햇빛 받은 물도 반짝반짝하고 너무 예뻤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 예쁜 게 안경을 끼니 보이는 거야! 몇 년만 하고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노안이 올 때까지 하고 있네.”
식당은 공단 내에 있는 낡은 건물 반지하였다.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엄마는 가족을 위해 23년을 일했다. 식대가 낮아 한 푼이라고 더 벌기 위해 아주머니 한 분을 고용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요일 특근이 있는 회사가 있으면 일요일에도 밥을 해주러 출근하셨다. 평일엔 거의 12시간을 일하셨다. 퇴근 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늘 ‘내일 뭐해주지’고민하셨다. 그래서 가끔 나와 동생은 학교에서 무얼 먹었는지 얘기하며 함께 식당 메뉴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우리 집 밥상은 자연스럽게 엄마네 식당에서 그날 나갔던 메뉴가 주가 되었다. 제육볶음, 생선가스, 부침개, 버섯 탕수, 야채튀김, 감자탕 뭐 이런 것들을 가져오시는 날은 나와 동생 사이에선 ‘맛있는 것’을 먹는 날이었다. 동생은 어떻게 점심을 해결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4학년 때부터 급식을 먹고 하교했기 때문에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 저녁은 이런 반찬들을 먹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의 음식 솜씨는 어쩔 수 없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맛이 없으면 손님들이 잔반을 많이 남기기 때문이다. 잔반이 많으면 이래저래 곤란했다. 반지하 식당엔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무거운 잔반을 들고 1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게다가 식자재비를 아끼기 위해 할머니께서 농사지으신 채소들로 요리를 하셨다. 밭에서 바로 따온 신선한 식재료도 좋은 음식 맛에 한몫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좋았던 엄마의 음식 솜씨 덕분에 당시 우리 집에 놀러 오던 내 친구들은 우리 엄마가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을 먹고 가기는 일도 왕왕 있었다.
엄마는 식당 일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신 후엔 집에서도 제법 요리를 많이 해주셨다. 주로 퇴근 후 티브이를 보다가 티브이에 나오는 레시피를 따라서 만들어주셨던 것 같다.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어 주면 출연자들은 지나치게 감탄을 했다. 그럼 엄마는 레시피를 잘 받아 적어서 집에 재료가 있는 날이면 그날 바로 만들어주셨다. 엄마가 카피한 티브이 속 음식은 대체로 맛있었다.
세월이 흘러 자녀들이 독립하고 소박하지만 빚 없는 집 한 채와 차 한 대를 갖게 된 엄마는 식당 일을 정리하셨다. 식당을 그만두니 내일 뭐해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올해가 엄마가 식당을 그만두신지 6년된 해다.
나는 엄마가 힘든 식당 일을 그만두신 게 너무 좋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내 수준에 뭐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엄마의 요리 솜씨가 형편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빠는 원래 아침에 생식을 드시고 점심, 저녁은 거의 밖에서 해결하신다. 그러니 엄마는 집에서 음식을 할 일이 거의 없다고 좋아하셨다. 그렇게 서서히 엄마의 손맛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김장도 하지 않으시며 엄마의 손맛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 같다.
김장을 하지 않는단 소문이 났더니 감사하게도 양쪽 사돈댁에서 김치를 몇 통씩 보내주신다. 양쪽에서 올라오는 음식을 받으실 때마다 “호호 그래도 사돈들이 요리를 잘하셔서 다행이네.” 하신다. 엄마 입장에선 더욱 요리를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몇 달 전 시댁에서 고구마순 김치를 한통 주셨다. 그리곤 엄마 갖다 드리라며 손질한 고구마순을 잔뜩 주셨다. 시어머니가 주신 고구마순 김치는 정말 맛있었다. 적당한 맵기와 감칠맛, 아삭한 식감이 너무 맛있었다. 배불러도 고구마순 김치 때문에 밥이 더 먹고 싶을 정도다.
나는 엄마한테 시어머니가 주신 고구마순을 갖다 드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엄마도 고구마순 김치를 뚝딱 만들어 한 통 싸주셨다. 오래전 엄마의 고구마순 김치 맛을 떠올리며 집에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먹어보았다. 기가막히게 맛이 없었다. 고구마순이 비릴 수가 있다는 걸 그날 알게 되었다. 손끝이 거뭇해 지실 정도로 열심히 고구마 순을 까셨던 시아버지께 죄송할 정도였다.
그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큰 딸~ 사돈한테 전화드렸어. 고구마 순 받자마자 바로 김치 해서 사위랑 너 먹으라고 한통 보냈다고. 엄청 맛있다고 고맙다고 했어.” 해맑게 말하는 엄마에게 “엄마, 엄마 거 맛없어서 못 먹겠어. 그리고 시어머니가 이미 고구마순 김치 한통 주셨는데 그거 진짜 맛있어.”라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란 이런 거겠지?
엄마는 요즘에도 종종 티브이에 나오는 레시피를 따라서 음식을 만드는데 심각하게 맛이 없다. 두 달 전엔 동생네 부부가 엄마 집에 놀러 갔는데 엄마가 티브이에서 본 맛있는 걸 해주겠다며 배추, 돼지고기, 화이트와인을 넣고 찜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동생 말에 의하면 최악이었다고 한다. 당도 낮은 화이트와인을 썼어야 했는데 당도가 높은 것을 써서 끔찍하게 달았다고.
우리 자매는 그간 엄마의 맛없는 요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손맛도 식당에 두고 나왔나 보다며 함께 슬퍼했다. 엄마의 요리 중 최근에 먹었던 가장 맛있는 음식은 돈가스다. 그냥 고기에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 묻혀서 튀긴 것.
나에게 음식은 젊었던 엄마의 삶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러 식당 일을 시작했던 엄마. 매일 저녁 엄마 삶의 흔적을 받아먹고 나는 170cm, 여동생은 174cm까지 자랐다. 세월이 많이 흘러 엄마의 젊음이 사라지자 손맛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아쉽다. 가끔은 젊은 엄마의 모습이, 손맛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