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른이 되어 만난 어린왕자

<어린왕자> 서평

by 코알라

한참 어렸을 때 얇은 문고집으로 어린 왕자를 처음 접했다. ‘나도 어린 왕자처럼 다른 별을 여행해 보고 싶다, 여우와의 이별이 너무 슬프다.’ 정도의 감상이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에 보았을 땐 ‘일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면 안 되겠구나, 길들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정도였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나도 무엇인가 발견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처음으로 어린 왕자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드디어 내가 어른을 위한 동화가 마음에 닿을 정도로 어른이 된건지 숙제를 위한 독서라 그런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의 저자인 생텍쥐페리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그 꿈을 이루어낸 사람이다. 대게 모험심이란건 어린 시절에 가장 강했다가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약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강한 모험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모험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제법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한 상태가 아닐까? 그런 그는 주변 사람들이 점점 동심을 잃어감이 안타까워 어린왕자를 집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야기 속 어린왕자가 만난 여우는“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 작가가 어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꼬마들만 봐도 끊임없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의 모습을 발견해낸다. “이건 망치라고 할까?” 하며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물건에서 귀신같이 연관성을 찾아내 하루 종일 상상놀이를 즐긴다. 그뿐만 아니라 체면이나 격식, 계산 따위보다 스스로를 기쁘게 하며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같은 어른이 되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헤아려보고 주변과 비교하며 서서히 중요한 것을 잊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작가는 그렇게 변한 어른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만 쫓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왕, 허영쟁이, 지리학자, 전철수 등을 빗대어 평균의 아둔한 어른들의 모습을 지적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타인과의 관계가 서툴다. 작가는 여우를 통해 진정한 관계를 맺는 법은 상대에게 시간을 들이는 것이며, 관계를 맺은 특별한 존재 덕분에 더 자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경시하다 관계를 맺지 못해 껍데기만 남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경계야 해야 한다.


어린 왕자가 만났던 어른들의 모습에서 전업주부인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왕이 어쭙잖은 명령을 해대는 모습은 아이들과 있을 때의 나였고, 스스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어린 왕자가 와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던 사업가는 아이들이 다가와 놀자고 했을 때 정신없이 살림살이만 살피는 내 모습이었다. 또한 지리학자가 직접 세상을 탐험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탐험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놀아달라는 아이들은 밀어내고 육아 서적을 읽으며 스스로가 좋은 엄마라는 정신승리를 하는 내 모습이었다. 과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 시간을 엉뚱한 데에 쓰고 있었구나 싶다. 보이지 않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내게 정말 중요한 것들이 있을텐데. 다시 한번 정비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나는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한 죽음을 앞두고 화자인‘나’와 대화를 나누는 소설의 끝부분이 가장 감명 깊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이 너무 작아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오히려 잘 된 것이이라며 “내 별은 여러 별 들 가운데 어느 한 별일 거야. 그러면 아저씨는 어느 별을 바라봐도 다 좋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 물려 쓰러졌다.>

당시 비행사는 항로를 개척해야 했으며, 검증되지 않은 비행기를 목숨 걸고 시연해보아야 했다. 그래서 비행 중 목숨을 잃는 동료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생텍쥐페리는 세상과 단절된 하늘에서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깊은 사색을 했을 것이다. 그는 독자가 죽음은 삶의 연장선임을 평온하게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역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소설을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부분을 여러 번 들추어 보았다. 까닭은 요즘 들어 부쩍 나이가 들어 보이시는 부모님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우리 아빠가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시다. 2022년 병원에서 간 이식을 준비하란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아빠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보너스 삶’을 살고 있다고, 앞으로 20년 뭐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말을 던질 정도로 아빠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됐다. 그때 이후로는 가족의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있어야 막상 죽음이 몰려왔을 때 속절없이 무너져내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자 덕분에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꽃 때문에 별을 떠났고, 꽃에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눈에 보이는 몸은 사라지지만 왔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시간 속엔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남아있다. 무언가를 보며 그를 떠올릴 것이고, 언젠가 슬픔이 가라앉으면 웃으면서 추억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았던 기억만 남아 내가 살아있는 한 그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세상에 크게 슬플일도, 기쁠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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