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태어난 날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날엔 순서가 없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다.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했다. 하지만 2년 전 내 또래의 사람이 처음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승희 언니는 나와 6살 차이가 나지만 동갑인 아이를 키우던 육아 동지였다. 언니 남편이 장기간 해외출장을 간 상태고 내 남편은 회사가 멀었기 때문에 우리는 저녁을 함께 해결하는 날이 많았다. 그야말로 그때 우리는 식구였다. 그러던 언니가 암에 걸렸다. 언니는 젊었고, 암은 초기였다. 아픈 아이를 혼자 키워낼 정도로 강철 체력을 자랑했던 그녀는 항암에 전념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3년 정도 흘렀을까. 항암치료 잘 받고 있는 줄만 알았던 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언니! 언니 잘 지내? 언니 밥은 먹었어? 애들은? 언니 보고 싶어!”
“… 내 마지막 인사하려고 전화했어. 아산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대. 나 너무 무서워. 집에 너무 있고 싶은데 내가 열이 나면 신랑이 간병을 못 하니까 호스피스 가 있으라고 한다. 집에서 있다가 열나면 응급실 왔다 갔다 하다가 어제 호스피스로 왔는데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여기 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있어. 내처럼 젊은 사람은 없어. 여기 너무 무섭고 불편하고 애들 보고 싶어.”
나는 오만가지 감정이 순식간에 밀려와 횡설수설했다.
“주변에서 다들 내가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 같다.”
나는 엉엉 우는 언니를 어쭙잖은 말재주로 달래보려고 애썼다. 지가 뭘 안다고 이제부턴 좋은 생각만 하고 감사한 것만 생각하자는 둥 헛소리를 씨불였다. 그러고 나서 3개월 만에 언니는 떠났다. 언니의 진짜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그저 언니의 남편이 언니 카카오톡 프로필을 국화로 바꿔놓은 것만 보았을 뿐이다. 언니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아니면 그토록 머물기 싫어했던 호스피스에서 이승을 떠났을까?
언니의 죽음이 있기 전엔, 죽음은 노인들이 몸이 조금씩 제구실을 하지 못하다가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에 돌아가신 분이라고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부였으니까. 그래서 죽음은 늘 생명의 탄생과 함께였다는 진실을 잊고 있었다. 삶은 죽음의 반대편에 붙어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만 나는 죽음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다. 왠지 입 밖으로 내뱉으면 정말 죽음이 불쑥 나를 부르거나 내가 소중한 사람들을 데려갈 것만 같았기 두려웠다.
나는 죽음이 왜 두려운 것일까. 아직 내 나이가 어린 편이기도 하지만 요즘엔 죽음을 병원에서 맞이하기 때문에 나는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목도할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 “제가 죽어봤는데요” 하고 말할 수 있는, 죽어본 사람이 없다. 그러니 죽으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것이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듯하다. 그렇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두려움에 떨다가 죽기는 싫다. 불안도가 높은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계속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나처럼 죽음이 낯선 사람에겐 계속해서 죽음을 떠올려 보는 것이 두려움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될 듯하다.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음과 마주한다. 나는 그때 횡설수설하지 않기 위해 늘 죽음이 곁에 있음을 기억하며 익숙해져 보기로 했다.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기에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 것이다. 방탕하게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와 관계를 맺는 대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고 싶다.
예컨대 요즘 내가 애정을 주고 있는 것은 반려 식물들이다. 아이들 때문에 층간 소음 방지 매트를 거실에 깔아둬서 그간 거실에 나와보지 못했던 불쌍한 녀석들인데 이번 겨울 폴더 매트를 처분하며 그 녀석들에게 거실 창가 자리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번식하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다 죽어가서 버리려고 했던 고무나무도 새순이 3개나 더 올라오고, 베고니아는 지난 주에 꽃이 폈다. 자고 일어나면 필로덴드론 잎사귀 끝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데 밤새 열심히 숨을 쉬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아 사랑스럽다. 셀렘은 꼭 아기 손바닥 같은 새순을 수줍게 펼쳐보이는데 초여름 나뭇잎처럼 여린 연두색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 반려식물들을 살피는 내 모습을 보고 잠에서 덜 깬 남편은 매번 화들짝 놀란다.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면 풀 한 포기도 저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하물며 인간인 나의 삶은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나에게 흐르는 시간을 잡아다 놓고 거기서 사랑을 발견을 하고 싶다. 죽음을 생각하니 내가 발견한 사랑스러운 것들을 글로 남기며 살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온다. 내가 죽고 사라져도 내가 끼적여 놓은 글은 남아있을 거다. 그럼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내가 실존하지 않아도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 나라는 사람 자체가 애초에 그런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글쓰기 모임에 앉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수업을 듣기 전엔 예전에 썼던 다이어리들을 불태워 버린 게 아쉽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제 일지 모르는 죽음을 향해 가는 내 인생이 두렵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내가 죽음을 부스터 삼아 ‘지금’에 더욱 불을 지피며 부채질하길 바란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나의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한 사랑을 나누다가 가고 싶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해피앤딩으로 향하는 길이 순탄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가는 길에 예쁜 꽃 보며, 시원한 바람 느끼며, 파란 하늘도 보며 감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번 주제에 대해 고민하며 종이에 죽음에 대해 쭉 써내려가 보았다. 그러다 나의 마지막 순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운이 좋다면 삶을 정리할 시간이 있겠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휙 가버릴 경우엔 남겨진 사람들이 너무 허망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언장을 한번 써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30대 중후반이 지나며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신년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신년 계획 대신 신년 유언장을 쓴다면 이것이야말로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가 바뀔 때마다 유언장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내가 죽고 나면 가족들이 “오! 그래도 유언장이 있었어.” 하며 유언장을 발견하겠지. 나를 떠나보내고 힘들어할 가족들을 위해 배꼽 빠지게 웃기는 유언장을 쓰고 싶었다. 내 안에 흩어져 있는 유머를 모조리 긁어모아 야심 차게 펜을 들었다.
유언장을 적기 직전의 마음가짐은 이랬지만 막상 적다 보니 스스로에게 질려버렸다. 한 명 한 명 붙잡고 고맙다, 사랑한다 구구절절 신파가 따로 없다. 종이에 펜으로 썼는데 심지어 쓰다 울어서 눈물자국까지 동그랗게 번져있다. 첫 번째 유언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년 1월에 쓸 두 번째 유언장은 조금 더 가볍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여하튼 유언장을 쓰며 발견한 점은 내 세상이 온통 감사함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충만함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편이 제대로 넘지도 못할 허들을 나열하며 의지를 다지는 것보다 나에게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죽음이 두렵다고 외면하기보단 더 잘 살기 위한 보조 장치로 이용해 보기로 결심했다. 삶의 유한함 덕분에 느낄 수 있는 이 충만함으로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