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잃고 나서야 그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는 한 해를 보냈다. 세상은 멈췄고 사람들의 세계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렇게 당연했던 일상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 난 후 우리의 일상은 더 특별해졌다. 소중한 것들은 대게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아주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어 쉽게 익숙해지고 또 가볍게 잊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랬으리라. 아주 사소하지만 사실은 아주 대단한 것들의 목록이었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짐이나 일, 여행일 수도 있겠다. 비록 이전의 일상은 우리를 떠나갔지만 다시 일상은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 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전거를 평소보다 많이 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무엇을 해 먹을지 생각했다. 시장에 나가 이따금 장을 보기도 하고, 제철에 나는 과일과 푸성귀를 보며 내가 이 계절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 문득 체감하기도 했다. 원치 않은 멈춤이었지만 멈출 수 있어 알게 된 새로운 일상의 모습이었다. 최근엔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작업을 마치고 한두 시간 정도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달릴 때 느끼는 홀가분함은 여행을 통해 느꼈던 환기의 기분을 불러왔다. 마음을 먹고 틈을 만들어야 가능했던 여행과 달리 자전거는 언제라도 누릴 수 있는 틈새 여행이 되었다.
나는 겁이 많아 형제들 중 가장 늦게 두 발 자전거를 탔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감이 오지 않았다. 한 번만 달려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데, 내게는 이 한 번의 문턱을 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답답하기만 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영 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 날은 아빠가 나의 모습을 흉내 내 보였다.
"페달을 천천히 구르니까 핸들이 어때? 흔들리지? 핸들이 흔들리면 불안해지는 거야. 그래서 미리 넘어질 걸 생각해 자꾸 한 발을 땅에 짚으려 하잖아. 그런데 아빠 봐봐!" 아빠는 세차게 페달을 굴렀다.
"이렇게 힘껏 구르니까 어때? 반듯하게 쭉 치고 나가지? 확신을 가지고 힘껏 굴러봐! 그러면 절대 안 넘어져!"
그동안 넘어지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던 셈이다. 이렇게 해서는 자전거가 굴러가지 않는다니 용기를 내야 했다. 아빠가 힘껏 미는 순간 페달을 힘차게 굴렸다. "빠르게 빠르게, 더더더더더더더" 그렇게 나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이 멈추고 나 역시 멈춰 서 버렸을 때, 나는 이날 아빠가 내게 해 준 말을 이따금 떠올렸다."멈춘 바퀴를 움직이려면 발을 힘껏 굴려야 한다." 가능성을 믿고 힘껏 페달을 밟았던 순간, 쭉 나아가던 그 찰나의 기분, 달릴 때의 충만한 기쁨이 생생해진다.우리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잔뜩 웅크린 한 해를 보냈지만 우리는 힘껏 페달을 밟아 나아가야 한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라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봄에서 출발한다. 사계절의 처음도 봄, 새 학기의 시작도 봄, 언 땅이 녹고 싹을 틔우는 시기도 봄. 그리고 마침 우리는 봄의 초입에 서있다. 다시 한번 힘껏 페달을 밟을 타이밍이다. "힘차게! 더 힘차게! 더더더더더더더!"
글ㅣ 정보화 @heyglly
*이 글은 따우전드 코리아(@thousandkorea)와 함께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