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5차 레시피 수정 및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미 레시피 개발이 끝난 제품이라 출시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맛을 보니 영 밍밍한 기분이 들었다. 말 그대로, 만족스럽지 못할 때 느껴지는 그 밍밍함. 팀원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결국 5월 말, 처음부터 다시 레시피 작업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테스트를 이어오고 있다.
좋은 성분, 좋은 맛, 그리고 제품 안정화. 이 세 가지는 서로의 영역을 종종 침범한다. 가장 좋은 성분과 맛을 유지하려면, 제품 안정화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정화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제품 안정화는 변질을 막고, 고객에게 안전하게 전달되기 위한 과정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균형을 맞추는 일은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식품 식품 브랜드의 오랜 고민일 것이다.
안정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끝내주게 맛있다. 과일과 허브, 원당의 섬세한 맛이 어우러져 싱그럽고, 풋풋하고, 푸르고, 여린 맛. 그 자체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다. 성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보다 더 심플할 수 없다. 오직 원재료와 비율, 블렌딩과 숙성 방식만으로 만들어낸 맛이니 속도 편안하다.
문제는, 안정화 과정에서 일부 맛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시점이 가장 괴롭다. 수년째 반복되는 딜레마다. 마음 같아서는 안정화 작업 없이 날것 그대로 판매하고 싶다. 이 맛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 많은 식품 브랜드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유통 과정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유통 루트를 최소화하거나, 냉장 냉동 유통(위탁) 또는 오프라인 직거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다만 그 경우 제품 가격이 상승하거나 판로가 좁아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원가를 줄여야 하고, 맛과 성분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고민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반복된다.
예전에 자문을 구하기 위해 모 업체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가 내게 던진 말은 이랬다. “노선을 정하셔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꼭 장인 같으세요. 그런데 와중에 돈을 버는 구조까지 만들려다 보니 부딪히는 게 많고 그래서 더 괴로우신 것 같아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느냐보다 어떤 토끼를 잡고 싶은지를 먼저 솔직하게 고민해 보세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느 정도로 타협해야 하는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늘 해오던 일이지만, 매 순간 새로운 기준과 관념이 생기고 사라져 때마다 결정을 내리는 일이 참 어렵다.
한없이 어설픈 내가 답답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룻밤 새 할 수 없는 일을 잘 해낼 수는 없고, 꼭 잘해야만 이 일을 할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지금처럼 발자취를 남기며 계속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헤맨 만큼 내 세계가 되고 걸은 만큼 내 길이 되듯, 지나야 할 길이라면 어설프게라도 걸어가면 된다. 잘하지 못하는 일일지라도, 잘 해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 길이 결국 우리만의 길이 될 테니 말이다. 이 일을 계속해나갈 이유는 이로써 충분하다. 이 일을 좋아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를 애정하니까.
사진과 글ㅣ@heyg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