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심리학

ep. 1

by 글쓰는 몽상가 LEE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모든 것을 메모로 소통하는 동료(feat. 용건을 전하려거든 메모로 하세요)


출처: unsplash



우리 회사는 보통 2년 주기로 지점마다 발령을 보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직원과 일하는 기회가 잦은 편이다. 장점은 다양한 사람과 일할 수 있고,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라도 2년이 지나면 사람이 바뀌기 때문에 버틸만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동료와도 2년 뒤에 헤어짐이 있다는 것과 특이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불안함도 있으니 어찌 보면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셈이다.


아무튼 몇 년 전, 내가 일하던 부서에 새로운 직원이 전입되어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이 동료의 독특했던 점이 3가지가 있었다(동료를 A라고 칭하겠다).



첫 번째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인사를 하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말을 건네는데 시선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땅을 보고 있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낯설고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말을 할 때 눈을 쳐다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거나 메신저, 혹은 포스트잇에 써서 드리겠다는 말을 하면서 직접적인 대화를 피했다. 회의를 해야 할 때조차도 본인의 의견은 메모로 전달하겠다는 A의 태도에 독특함과 뭔지 모를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는 메모를 좋아하는 만큼 모든 것을 메모로 전달하는데 내용이 엄청 디테일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가 알아보기 쉽게 배려차원에서 꼼꼼하게 작성하는구나 싶었는데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매사에 핵심적인 내용보다 미사여구들이 너무 많았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도 간결하게 핵심만 담으면 1~3장 정도면 될 내용을 A는 7~8장까지 작성하여 제출하는 식이다. 최종적으로 보고서를 취합하는 담당 직원 입장에서는 A가 제출하는 보고서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지만 지적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A씨, 내용을 좀 적당히 쓰세요."라고 하기엔 같은 직급의 동료이고 그 안에 어쨌거나 핵심 내용은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상사가 지적하면 그 의견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을 텐데 위에서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실무담당자만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이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웠던 건 A가 성과급을 받아 팀원들에게 점심을 사줄 때였는데, 어떤 메뉴에 어떤 재료가 들어간 특정 음식을 시켜야 하고 점심엔 얼마를 써야 하는지 포스트잇에 상세히 적어 나에게 보여줬을 때였다.



세 번째독특한 말투이다.

사람마다 고유의 말투가 있으니 그건 자연스러운 것인데, A의 말투가 좋거나 나쁘다거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미묘하게 자극하는 화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매사에 어떤 일의 결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을 한다. 어느 날 동료 B가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발을 삐끗해서 물리치료를 받고 온 적이 있었다. 다들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다. 치료 꾸준히 잘 받아라.라는 걱정을 담은 말을 전했는데 A는 남달랐다.


A: "아 그 길 가다가 삐끗하는 거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제가 아는 사람은 근육이 뭐가 잘못됐는지 잘 못 걷게 되더라고요. 혹시 모르니 정밀검사도 한번 받아보세요. 정말 삐끗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A의 말을 듣는 순간 주변 사람과 동료 B의 표정이 굳었다.

넘어져서 치료받고 온 사람에게 자신의 지인이 잘 못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의도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A의 독특한 3가지 특성에 대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미묘한 불편함과 언짢음이 느껴지고,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A의 행동에 숨겨진 심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낯선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임에도 같이 일하면서 부딪히는 상황 때문인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 대화할 때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낯가림과 어색함에 시선을 회피하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지만 A는 상대가 인식할 정도로 눈 맞춤을 피하며 지나치게 자신을 방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단순한 낯가림이라기보단 사회적 불안(social anxiety)의 단면적인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즉, 타인의 시선에 대해 “내가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뭔가 평가받고 있는 것 같아”와 같은 불편한 감정을 자동적으로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을까.


* 참고

사회불안(social anxiety)
: 사회불안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교류하는 상황에서의 불안을 의미한다. 증상이 심화되면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로 일상 및 사회생활에 적응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핵심증상은 타인에게 관찰되거나 평가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현저한 공포 또는 불안을 느끼며 타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이나 불안한 증상을 보일 수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러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한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말'보다 '글'로 전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A는 상대와 말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갈등이 심화되었던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A에게 의사소통과 관련된 상처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가 없는 반면, 글은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혹시나 잘못된 문장을 수정할 수 있으니 실수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 메모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작성하는 것

'나는 모든 것을 다 써놓았으니 나에게 다시 질문하지 말아 달라'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간단히 써놓으면 그 부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물어보게 되니 말이다.

이는 통제욕(control)의 표현일 수 있는데 자신의 의견을 완벽하게 정리해 두면, 예상치 못한 변수나 불편한 대화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A는 상호작용에서의 예측 불가능성을 굉장히 불편하게 여기는 스타일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 모든 일에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결말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

앞서 예상해 보는 A의 특성을 짐작하건대 이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모든 상황의 최악까지 생각해야 대비할 수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까지 하는 것에 익숙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최악도 대비했으니, 난 괜찮아”라는 자기 암시는 겉보기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불안을 통제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A는 전반적으로 대인관계에서 다소 예민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소통과 관련된 갈등, 혹은 평가받는 상황에 대한 부정적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들을 미리 대비하고 조절하려는 인지적 전략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태도, 디테일한 메모,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습관.

A의 이러한 특성은 단순히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을 보여주는 단서일 수도 있다. 이를 토대로 그와 같은 특성을 보이는 사람을 이해하며, 서로 다른 마음을 존중하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A라는 한 사람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해는 말보다 훨씬 깊은 대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