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연애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요즘은 특히 다양해진 것 같다. 그 중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 볼 수 있다는 [나는 솔로]를 즐겨본다. 물론 편집에 따라 출연진들의 언행이 과하게 보일 수 있어 방송용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보는 편이다.
방송은 크게 모태 솔로특집, 돌싱특집, 일반 솔로특집으로 방영된다. 모태솔로 특집에서 특히나 독특한 캐릭터들을 많이 본 거 같다. 프로그램 특성상 짧은 기간에 호감가는 이성을 찾아야하기에 자칫 여러명에게 여지를 주는듯이 보일 수 있지만 시청자들도 출연진들도 모두 이해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정도'와 '진심'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출연진들중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자신을 알리고 싶어서' 나온 사람들이다. 프로그램 출연진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다기보다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달까(실제로 프로그램 출연이후 DM으로 연락을 받는 분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정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성을 만나러 온것인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나온것인지 진정성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인데, 방송이 유명해지면 질수록 인플루언서를 생각하고 출연하는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의 '희생양'이 되는 상대방 출연진일 것이다. 매사 진심을 다해 데이트에 임해도 상대가 데이트보다 유명세에 관심이 많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두 번째는 반대로 '프로그램에 너무 심취'한 사람들이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이렇게 프로그램에 심취하는 출연진만큼 고마운 존재가 없을 것이다. 소위 '빌런'이라 불리는 캐릭터들. 그 사람들 덕분에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가 한층 올라간다.
이 사람들은 촬영되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날것의' 모습을 보일때가 많다. 인간이라면 한번쯤 마음으로만 생각하는 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는게 신기하기도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 방송이 끝난 후, 본인들 스스로도 모니터링하며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머쓱해하기도 한다. 무튼 이런 재미를 선사하는 빌런 캐릭터들 덕분에 다양한 인간심리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은 대강 비슷한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여러 사람에게 여지를 남기는 어장의 달인들이 있다.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니까 알아가는 과정은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은 따로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보험으로 둔다던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해서 대타를 찾는다던지 그런 행동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설의 5:1 데이트를 했던 출연자가 있었는데, 그 분은 끝내 최종선택에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최종선택은 그분 마음이지만 매순간 모든 출연자에게 플러팅을 하며 어장관리하는 모습에서 재미는 있지만 정말 주변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기수에서는 데이트 한번했을 뿐인데, 상대 출연자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경우였다. 식사 데이트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A는 B에게 흥미와 관심이 사라졌는데 B는 그 데이트가 너무나 좋았고 A또한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상황이었다. 한번의 데이트에 연애와 이별을 혼자 다 겪은 B는 프로그램 내내 자신에게 심취한듯 했다.
이들에게는 어떤 심리가 있는걸까?
연애 프로그램 속 캐릭터들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들이다. 여러 사람에게 여지를 남기는 어장의 달인, 단 한 번의 데이트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그리고 프로그램 자체에 지나치게 몰입한 빌런 캐릭터들까지. 이들의 행동은 단순히 연애를 못해서 혹은 성격이 이상해서라고 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면들이 있는 것 같다.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흘리는 출연자들은 사랑을 주기보다는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다는 경험은 자신의 가치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진심보다는 여러 사람의 관심이 주는 안정감에 더 끌리게 된다. 이는 연애라기보다는 ‘자기 존재감 확인’에 가깝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보험처럼 두는 행동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 관계를 하나로 좁히지 못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선택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감정의 출구를 여러 개 만들어두는 방식이다.
단 한 번의 데이트에 연애와 이별을 혼자 다 겪은 듯한 출연자의 경우, 상대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몰입해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바라는 관계의 모습으로 해석하고 덧입히는 것이다. 이는 상대를 향한 관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투사하는 과정에 가깝다.
프로그램에 과하게 심취한 이른바 ‘빌런’ 캐릭터들은 촬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감정이 증폭되며 현실 감각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제한된 공간, 짧은 시간, 경쟁 구도는 감정을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만들고 이 과정에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결국 연애 프로그램 속 다양한 캐릭터들은 사랑을 대하는 각자의 불안과 욕구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관심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관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또 누군가는 상황 자체에 몰입해 감정의 균형을 잃는다.
연애프로그램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화면 속 출연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연애에서 느끼는 불안, 기대, 인정 욕구를 과장된 형태로 보여주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현실에서는 조심스럽게 숨기거나 애써 외면하던 감정들이 카메라 앞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시청자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쉽게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때로는 출연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과도하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유독 어떤 캐릭터가 거슬리거나, 반대로 유난히 공감이 갔던 적이 있다면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감정은 단순히 ‘저 사람은 별로다’ 혹은 ‘저 사람은 이해된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 속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이나 혹은 내가 애써 부정해온 모습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타인을 평가하는 재미로만 소비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때 가장 의미가 있다. 내가 연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불안해지는 순간 나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그리고 상대에게서 무엇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독자님들도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느꼈던 불편함이나 공감의 순간을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어쩌면 우리가 쉽게 비판했던 그 캐릭터의 모습이, 아주 다른 방식으로 우리 안에도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