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심리학

ep. 16

by 글쓰는 몽상가 LEE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말 한마디로 빚 만들기(feat. 반존대는 긍정적 플러팅 기술로 봐야 하는가)

출처: unsplash



반존대는 흔히 연상에게 “글몽씨 배 안 고파요? 피자 먹으러 갈까?”처럼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친근함과 호감을 표현하는 화법으로 상황에 맞게 쓰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모 연애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한 출연자는 본인이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출연자에게 반존대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로 친밀함이 쌓이고 편한 사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말을 놓아버리는 건 내 입장에선 은근히 거슬리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글몽씨 꼰대네 꼰대! 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불편하고 거슬리는 건 맞으니까 꼰대가 맞나 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우리 회사에 직원이 새로 들어왔는데 신입에다가 갓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라 본인보다 어린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기 넘치는 직원의 화법은 몇 년 같이 근무한 동료처럼 편안하고 거리낌 없었다.


부장님: 신입씨, 대학 졸업하고 막 왔으면 부모님도 연세가 아직은 다 젊으시겠어요!

신입: 아 네네, 80년생?

부장님: 이야. 결혼을 일찍 하셨나 봐요. (중략) 집이 서울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주말에는 본가로 내려가나요?

신입: 아 아뇨, 보통 서울 집에만

(중략)

신입: 와 근데 부장님 진짜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세요! 관리 잘하시는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말 끝이 반말로 돼버린다(...). 혹여나 수줍은 성격에 말소리가 작아지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매우 힘차고 씩씩했다.






이건 꼭 연장자에게만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생이든 유치원생이든 나이불문하고 적어도 초면에는 존댓말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친근하고 싹싹한 이미지를 위한 나름의 전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은 상황과 맥락이 중요하다. 아무리 칭찬을 한다고 해도 어설픈 반존대는 긍정적인 플러팅 기술보단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칠 확률이 크다.


이런 화법을 사용하는 이들에겐 어떤 심리가 있는 걸까?



# 친밀감 형성을 위한 사회적 기술

반존대는 기본적으로 ‘거리 좁히기 전략’으로 사회심리학에서는 관계 친밀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존댓말은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 안전감을 주고, 반말은 친밀감을 강화한다. 반존대는 이 두 요소를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상대에게 편안함과 존중을 섞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상대가 충분히 관계에 익숙하지 않거나 나이와 지위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역효과가 발생한다. 편하다고 느끼는 대신 ‘무례하다’는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 자기 존재감 확인과 사회적 비교

반존대를 남용하는 사람은 종종 자아확증과 사회적 비교 욕구가 강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위치를 확인하려 한다. 반존대 화법은 ‘나는 편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동시에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게 된다.


# 권력과 통제 욕구의 미묘한 표현

나이 또는 경험이 적은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반말을 쓰는 경우, 심리학적으로 통제와 권력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언어와 권력의 상관성 연구에 따르면 말투와 어조는 사회적 지위를 무의식적으로 반영한다. 특히 반존대는 ‘친근함’이라는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싶은 욕구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 관계 불안과 자기 확신 결핍

일부 심리학 연구에서는 친근하지만 권위적 요소가 섞인 화법을 불안형 애착과 연결 짓기도 한다. 친밀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신경 쓰며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태도가 나타난다. 반존대는 자신이 관계에서 환영받는 존재인지, 상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심리적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반존대를 쓰는 사람들의 행동은 관계 속 불안과 욕구가 드러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친근함과 호감을 표현하며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권력이나 통제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섞어 관계를 주도하려 하며, 또 누군가는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대의 반응을 관찰한다.


반존대 화법이 흥미로운 이유는 상대의 연령, 사회적 위치, 관계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주지만, 그 불편함은 우리가 관계에서 느끼는 경계, 친밀감, 인정 욕구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조심스럽게 숨기거나 애써 통제하는 감정들이 반존대를 쓰는 순간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 사람의 말투와 태도에 집중하게 되고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반존대 화법을 보며 유독 거슬렸거나 혹은 친근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감정은 단순히 ‘저 사람은 예의 없다’ 혹은 ‘저 사람은 귀엽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 속에서 얼마나 친밀함과 경계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내가 애써 부정해 온 인간적 결핍과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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