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7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에 각자의 사연 없는 사람 없다지만 유독 자기 연민이 심한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자기 연민은 자신을 애처롭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뭐든지 그 '적당히'를 넘어버리면 자기 연민은 깊은 수렁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위험함이 되기도 한다.
애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여친과의 역대급 기 빨리는 연애
인간관계 중 제일 친밀한 관계인 연인사이의 에피소드를 많이 다뤘던 연애의 참견이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심리를 많이 분석하게 되는 거 같다. 하지만 이는 꼭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웬만하면 내 이야기를 하는 편이 아니라서 정말 어렵게 힘든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 이직이 쉽지 않은 거 같아. 나름 자격증도 열심히 따고 준비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좀 힘드네.
지인: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채용공고 자체가 워낙 없긴 하더라고. 그래도 넌 회사 안정적이지 않아? 그럼 그냥 다니지 그래?
나: 내가 이직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보니까 더 나이 들기전에 그쪽으로 얼른 이직을 해야 경력을 쌓을 수 있을거 같아서.
지인: 야 그래도 너는 웬만하면 잘리지 않는 회사에 다니고라도 있지. 나는 진짜 매번 프로젝트마다 계약해야하는데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몰라. 다른 사람들은 취업도 척척하고 일도 잘하고 그러던데 나는 매사에 힘들게 힘들게 성과가 나는거 같단말이야. 세상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거 같아.
나: 아 그렇지.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하면 부담되긴 하겠다.
지인: 그러니까 말이야. 너는 진짜 복 받은 줄 알고 다녀. 나 봐봐. 맨날 야근하고 힘들게 일하면 뭐 해. 다음 프로젝트 못 따면 바로 아웃인데. 너는 나에 비하면 훨씬 나은 거야! 저번주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고민의 주인공이 뒤 바뀌어버렸다. 나의 고민은 고민도 아닌 거라는 소리를 들으니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세상 힘든 고난과 역경은 자신에게만 오는 거 같다며 타인의 고민은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는 대체 무엇일까?
자기 연민은 심리적으로 매우 안전한 감정이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서사를 유지하는 순간 실패와 좌절의 책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자기 보호 전략의 하나로 본다. 상황이 힘들수록 사람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외부 요인이나 불운에 원인을 돌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자기 연민이 반복될수록 고통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나는 힘든 사람이 되고, 힘든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만 관심과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사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고통을 은근히 비교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타인과 비교하며 상대적 위치를 확인한다. 이때 비교의 대상이 성공이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되는 순간, 대화는 위로가 아니라 경쟁으로 변한다.
“너도 힘들겠지만, 나는 더 힘들어.” 이 말속에는 위로보다 인정 욕구가 먼저 숨어 있다. 상대의 고통을 충분히 듣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이유도 결국은 내 고통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감의 방향이 늘 자기 자신에게만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할 여유가 없을 만큼 자기감정에 잠겨 있는 상태다. 그래서 누군가 어렵게 꺼낸 고민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한다.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이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피해자의 위치를 고수하려 한다. 피해자로 남아 있으면 변화하지 않아도 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심리를 학습된 무기력과 연결 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실패 경험 속에서 사람은 노력보다 한탄이 더 익숙한 반응이 된다.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감정이지만 그 안에 오래 머무를수록 세상은 나에게만 유독 가혹한 곳이 된다. 타인의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지고 공감은 선택적인 것이 된다.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고통의 서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을 조금씩 멀어지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그날 대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내 고민이 가벼워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위로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럴 수 있겠다’라는 한 문장 정도는 기대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자기 연민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는 순간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사연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 올리며 존재를 확인하려는 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