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0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연이 있다.
'저는 왜 항상 이상한 사람들만 꼬일까요?'
'연애도, 친구도, 직장도 늘 문제 있는 사람만 만나요.'
'저만 정상이고 주변은 다 이상한 것 같아요.'
사연자는 늘 지쳐 있고 억울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겪은 개별 사건만 놓고 보면 분명 부당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비슷한 유형의 갈등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은 진지하게 한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패턴에는 이유가 있다. 심리학에서 관계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우연만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익숙한 사람을 선택한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관계의 방식, 사랑받았던 방식, 혹은 상처받았던 방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기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정 기복이 심한 보호자 밑에서 자란 사람은 처음에는 안정적인 사람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 자주 휘둘렸던 사람은 이상하게도 또 비슷한 유형에게 끌린다. 머리는 '또 저런 사람이네'라고 말하지만 몸은 이미 익숙함을 안정감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관계는 바뀌는데 유형은 바뀌지 않는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반복강박은 이미 고통스러웠던 관계 장면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경향을 뜻한다. 어린 시절 비난과 평가 속에서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 곁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정서적으로 거리 두는 보호자 밑에서 자란 사람은 차갑고 회피적인 상대에게 끌리기도 한다. 의식적으로는 '이번엔 다른 사람을 만나야지'라고 하지만 무의식은 익숙한 정서를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장소를 바꿔도 직업을 바꿔도 인간관계의 결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상대는 달라도 감정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우리가 타인을 만날 때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형성된 ‘대상 표상’에 맞춰 인식한다고 본다. 어린 시절 형성된 ‘권위적인 사람’, ‘나를 무시하는 사람’, ‘나를 떠나는 사람’에 대한 내적 이미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계 선택의 필터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유형을 만나면 낯설기보다 익숙하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친밀감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결국 '이상한 사람이 꼬인다'기보다 내 내면의 표상과 맞는 사람이 선택되는 구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내 안의 공격성이나 미성숙함은 보이지 않고 타인의 문제만 또렷해진다.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자존감을 지켜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성찰을 막는다.
정신병리학에서는 반복적으로 피해 위치에 머무는 현상을 ‘피해자 동일시’로 설명하기도 한다. 피해자 위치는 도덕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이 구조가 굳어지면 관계에서 능동적인 선택자로 서기 어려워진다. 누가 다가오는지, 누가 머무는지, 누가 선을 넘는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당하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다. 관계는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결론은 항상 같다. '역시 세상엔 이상한 사람뿐이야.'
반복 패턴의 핵심은 자기 인식에 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왜 초반의 경고 신호를 무시했는지, 왜 불편함을 합리화했는지를 모르면 선택은 계속 무의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의식적 선택은 대부분 과거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현재의 관계가 과거의 정서를 닮아간다.
왜 내 주변엔 항상 이상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단지 운이 나빠서일까, 아니면 세상이 유독 나에게만 가혹해서일까. 반복되는 관계가 불편한 이유는 단순히 상대가 문제여서가 아니라 그 장면이 어딘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대사, 비슷한 감정, 비슷한 결말이 반복된다. 분노하고, 참고, 실망하고, 결국 단절하는 흐름까지 닮아 있다. 그래서 사람은 점점 확신하게 된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내 주변엔 왜 이런 사람뿐일까.'
하지만 어쩌면 불편한 지점은 거기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내가 익숙한 구조 안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의 작은 신호를 애써 무시하고 불편함을 합리화하고,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기대 속에서 또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배웠다. 참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 눈치를 보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 갈등을 피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배운 사람. 그 전략은 한때 우리를 지켜줬다. 그래서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오래된 전략이 지금의 삶에서도 자동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미 필요 없어진 방어가 여전히 현재의 관계를 설계하고 있다. 그래서 비슷한 유형이 반복되고 비슷한 상처가 남는다. 이 말은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는 분명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다만 그 사람이 내 삶에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는 결국 나의 경계와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관계는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지속 여부는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결국 성숙한 관계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면서도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사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이상 그 구조에 머물지 않게 되는 것. 어쩌면 관계를 바꾼다는 건 내 자리를 정돈하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