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이게 진짜일리 없을법한 희한한 사연들이 꽤 있다. 중소기업에 갓입사한 신입사원의 패기에 대한 글이 있었다. 원본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각색되어서 사연이 덧붙여졌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아무튼 제목을 보고 일을 기깔나게 잘하는 육각형 직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은 전혀 달랐다. 일 배울 생각보다 자신이 회사에서 누릴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 권리를 반드시 챙겨야하는 직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식 후 택시타고 귀가하라는 명목으로 법인카드를 신입사원에게 주었는데, 마트에서 사용한 내역이 나와서 물어봤더니 택시 안타는 대신에 마트에서 필요한거 장 봤는데 뭐가 문제가 되냐고 했다.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왔다.
탕비실에 과자와 커피믹스를 한 뭉텅이 집어가는 모습이 보여 뭐하는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회사에서 간식을 먹지 않아서 자신의 몫을 집에 가져가는 거라고 한다.
기존의 직원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신입직원이 자신은 점심을 먹지 않고 점심시간에 일할테니 퇴근도 1시간 일찍하겠다고 했다.
신입직원의 어머니가 회사로 전화가 왔다. 왜 야근을 시키는거며 왜 퇴근이후에도 연락을 해서 애를 힘들게 하느냐고.
등등 일반적인 회사원이라면 생각도 안해볼법한 비범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다 하기 위해서는 야근은 어쩔 수 없는데도 칼퇴를 해버린다거나, 자신은 회사에 허드렛일을 하러 온건 아니라서 다른 일은 못하겠다고해서 결국 그 직원은 3개월도 못채우고 퇴사를 하였다고한다. 퇴사과정에서도 부당한 퇴사라고 그 부모가 노동청에 신고를 하느니마느니 끝까지 애를 먹였다고 하는데 충분히 예상되는 전개이다(...).
이 사연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왜 저러냐.'
'개념이 없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나는 운이 좋아서인지 이렇게까지 특이한 사람을 주변에서 마주한적은 없다(앞으로도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류이긴하다). 이렇게 자신이 해야할 ‘의무’보다 ‘권리’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어떤 심리를 가진 것일까?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자아는 자신의 권리를 알고 부당함에 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권리는 강조되지만 책임은 최소화되는 것이다. 관계는 상호적 구조인데 사고는 일방향인 것이다. 이런 양상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특권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권 의식은 내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움직이는데 문제는 그 특별함이 성취나 기여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자동으로 보장된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당당하고 뻔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임상적으로는 그 이면에 취약한 자존감이 자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애적 성향은 반드시 거창한 우월감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손해 보면 안된다'는 과도한 경계로 표현되기도 한다. 작은 손해도 자존감의 붕괴로 느껴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계산하고 방어한다.
회사에서의 암묵적 규칙이나 공동체적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일은 사실 어느 정도의 '자기 희생'과 '관계적 감각'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자아가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 경우 이런 요구는 곧 '착취'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사연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장면은 부모의 전화이다. 성인이 된 자녀의 직장 문제에 부모가 직접 개입하는 모습은 단순히 '과잉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분리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배운다. 어릴 때는 부모와 하나인것처럼 살아간다. 감정도 결정도 책임도 대부분 부모가 함께 짊어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점차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는 경험'을 반복해야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독립된 개인이 된다. 이 분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겉으로는 성인이지만 중요한 갈등 상황에서 여전히 부모 체계 안으로 되돌아간다. 스스로 조율하기보다 보호자를 찾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갈등도 마치 학교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처럼 처리된다. '내가 직접 해결한다'기보다 '위에서 해결해줘야 한다'는 구조가 된다. 이런 경우 당사자는 자신이 의존적이라고 느끼지 않고 오히려 정당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떠안는 연습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런 행동 이면에는 강한 합리화가 작동한다. 합리화는 자아를 보호하는 방어기제이다. 하지만 그 방어가 과도해지면 자기 성찰은 멈춘다. 타인의 불편함은 '예민함'으로 공동체의 규칙은 '답답하게 구속하는 것'으로 재해석된다. 그 결과 반복되는 것은 관계의 단절이다. 조직이 문제이고, 선배가 문제이고, 문화가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권리만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맞다. 틀리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관계는 옳고 그름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의무를 다한 뒤 주장하는 권리는 힘을 갖지만 책임 없는 권리는 신뢰를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신뢰가 없는 곳에서 오래 머무르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사연의 핵심은 무례함이 아니라 미성숙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단순히 권리를 주장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나의 욕구를 조율하고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권리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권리만으로는 관계가 완성되지 않는다. 어쩌면 문제는 권리를 아는 데 있지 않다. 권리와 책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