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심리학

ep. 22

by 글쓰는 몽상가 LEE


* 혹시 모를 불편함을 드리지 않기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내멋대로 심리학』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시선과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성향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타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고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쉬는게 어렵고 불편한 사람들(feat. 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aleksandar-cvetanovic-A7nK49HCqSI-unsplash.jpg 출처: unsplash


이번 주말에 뭐해?
글쎄..일단 밀린 일 좀 하고 운동 가고 자기계발 영상도 좀 보고..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아깝잖아.


가끔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 쉬는 날인데 쉬는 계획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계획’이 없다. 어떤 지인은 휴가를 내고도 노트북을 챙겨 간다.


혹시 급한 연락 오면 어쩌려고.


그러고는 숙소에서 틈틈이 메일을 확인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쉬라고 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가만히 있으면 괜히 불안해요.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게 죄짓는 느낌이에요.


겉으로 보면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일도 잘하고 맡은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휴식’ 앞에서 가장 불안하고 불편해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일 중독 아니야?
워커홀릭이네.
좀 쉬어도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하지?


이들은 왜 휴식이 불안하고 불편해진걸까?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요.
쉬면 오히려 더 불안해요.

이 말은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쉼이 불안을 유발한다는 것은 외부 자극이 사라질 때 내부 긴장이 상승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병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만성적 불안 수준의 상승과 관련될 수 있다.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 상태로 유지된다. 일정과 목표는 불안을 구조화한다. 하지만 활동이 멈추면 억제되어 있던 불안이 의식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쉼은 회복이 아니라 자신의 공허감과 무력감에 그대로 노출되는 시간이다.



# 성취 기반 자존감과 조건적 자기 가치

앞서 말했듯 이들은 종종 성취 기반 자존감 구조를 가진다. 이는 조건적 자기 가치와 연결될 수 있는데 어린 시절 애정과 인정이 결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경우 자아는 하나의 공식을 학습한다.

잘하면 안전하다.
성과가 있으면 관계가 유지된다.


이 구조 안에서는 존재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고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구조는 겉으로는 기능적이고 성실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항상 붕괴 가능성을 전제한다. 성과가 멈추면 자기 가치도 함께 흔들릴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온다. 그래서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인 것이다.



# 강박적 성향과 과잉 적응

강박적 성격 특성이 보이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강박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강박장애(OCD)와는 다르다. 침투 사고와 의례적 행동이 중심이 되는 장애라기보다는 통제와 완벽성, 과도한 책임감에 기울어진 성격 구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불안
- 휴식 중에도 생산성을 계산함
-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높은 기준 적용
- 충분히 했다는 감각의 부재


겉으로는 자기관리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긴장 상태가 유지된다. 또한 일부는 과잉 적응의 양상을 보인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기준에 지나치게 맞추며 살아온 결과 자기 욕구를 인식하는 능력이 약해진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막상 “뭐 하고 싶어?” 라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자기 욕구보다 과제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 공허감과 회피


쉼이 어려운 사람들 중 일부는 은근한 공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다 끝내고 나면 허무해요.
계속 뭔가를 해야 덜 공허해요.


이는 우울 스펙트럼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일상 기능은 유지되지만 내면에서는 무의미감과 공허감이 지속된다.

이때 바쁨은 회피 전략이 된다. 멈추는 순간,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슬픔과 외로움, 인정 욕구, 분노. 바쁠 때는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들. 결국 문제는 쉼 자체가 아니라 쉼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서'일지도 모른다.



# 통제 상실에 대한 두려움


이들은 통제를 잃는 상황을 과도하게 위협적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은 통제 가능하다.

노력과 결과라는 인과가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쉼은 비구조적이다. 생각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감정은 예측되지 않는다. 내면이 충분히 통합되지 못한 경우 이 비구조성은 곧 불안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다시 구조를 만든다.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하고 일정을 채운다.






쉬는 게 어려운 사람들은 단순히 부지런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멈추는 순간 올라오는 불안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쉼을 기술의 문제로 생각한다. 잘 쉬는 법을 배우면 된다고.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쉼은 기술이 아니라 자기 구조의 문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존재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감각. 그 감각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면 쉼은 휴식이 아니라 위협이 된다.


그래서 다시 움직인다. 다시 자신을 증명한다. 다시 긴장을 유지한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더 효율적으로 사는 법이 아니라 멈춰도 무너지지 않는 자아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쉼이 편안해지는 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reuben-juarez-C4sxVxcXEQg-unsplash (3).jpg 출처: unspal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