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심리노트

chapter. 12

by 글쓰는 몽상가 LEE


* [심심한 심리노트]는 겹겹이 쌓인 마음의 깊이를 심심(甚深)하게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심심(心心)하게 스치는 감정 또는 사색을 담는 에세이입니다. 주로 심리를 주제로 한 영화 혹은 책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울림을 받았는지 기록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영화 혹은 책 등 작품에 대한 줄거리나 설명은 간략히 할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이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Page. 24


[INTRO]


어떤 시절에는 세상이 둘로 나뉘어 보인다. 밝고 안전한 세계와 설명되지 않는 어두운 세계.

오늘 소개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그 경계에 서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지나왔을 마음의 균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극적인 사건보다 내면의 흔들림을 따라간다. 무엇이 옳은지 알던 세계가 갑자기 낯설어지고 익숙한 도덕이 더 이상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그 틈에서 불안은 시작된다.

데미안은 그 불안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성장담이라기보다 불안을 통과하는 감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asdasd.jpg
제목 없음.jpg
출처: 나무위키


*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1962)

헤세는 독일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부모는 선교사였고 외조부 역시 인도 선교에 헌신했던 인물이었다. 엄격하고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옳음'과 '신앙'이라는 기준 안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그 질서에 균열을 느꼈다.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도망치기도 했고 우울과 불안으로 방황하는 시기를 겪었다.


청년기에는 시도 쓰고 서점에서 일하며 문학과 가까워졌지만 내면의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말해 '적응하지 못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사회적 규범과 종교적 도덕, 국가적 이념에 쉽게 동화되지 않았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사회의 전쟁 열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그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시기 헤세는 깊은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가족의 병을 비롯해 전쟁의 혼란, 사회적 고립이 겹치며 그는 심리 치료를 받게 된다. 이때 그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무의식, 그림자, 자아의 통합과 같은 개념은 이후 그의 작품 전반에 스며든다.


『데미안』은 바로 이 시기에 쓰였다. 1919년 전쟁 직후의 유럽은 붕괴와 상실의 공기 속에 있었다. 기존의 가치 체계는 무너졌고 젊은 세대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 소설은 그런 시대의 불안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동시에 개인이 외부의 세계가 아니라 자기 내부의 세계를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에게 성장은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아니라 내면의 분열을 직면하고 통합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 통합은 평온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고독을 동반한다.






Page. 25


[작품에 대하여]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을 '밝은 세계' 속에서 보낸다. 부모의 보호와 도덕적 확신, 질서 있는 일상. 그러나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자신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세계는 어둡고 불안하며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바로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데미안은 친구이자 거울 때로는 안내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길을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싱클레어가 이미 느끼고 있던 의문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 반복되는 감각은 '분열'이다.


선과 악, 빛과 어둠, 신과 악마, 질서와 충동. 헤세는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옳다고 믿어온 세계는 완전하지 않으며 배제해온 세계 역시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작품 속 상징인 '아브락사스'는 그 양면성을 보여준다. 선과 악을 동시에 품는 존재.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둘을 함께 끌어안는 것.


이 상징은 독자를 불편하고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명확한 구분 속에서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데미안]의 문장은 확신에 차 있기보다 흔들린다. 싱클레어의 내면 독백은 종종 모순되고 과장되며 때로는 지나치게 예민한듯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예민함이 이 소설의 핵심인거 같다.


감정은 여기서 해결되지 않는다. 불안은 극복되지 않는다. 대신 그 감정들이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된다. 싱클레어는 결국 자기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것은 승리라기보다 선택에 가깝다. 누군가가 정해준 세계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감각을 신뢰하기로 하는 선택. 그 선택은 고독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화려한 결말 대신 자각으로 끝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처음 읽었을 때 문장이 강렬했지만 바로 와닿지는 않아서 한참을 생각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탄생이 아니라 균열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알은 보호이지만 동시에 닫힌 세계이다. 그 안에서는 안전하지만 날 수는 없다. 깨뜨리는 순간 이전의 세계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장은 희망보다 결단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을 살아보려 했다'는 문장은 이상하게도 용기보다 두려움이 먼저 떠올랐다. 남이 정해준 길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각은 아직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이름 없는 것을 따라가는 일은 늘 불안하다. 그래서 어려웠던 게 아닐까.






어쩌면 [데미안]은 우리를 변화시키기보다 이미 시작된 변화를 자각하게 만드는 소설인지도 모른다. 깨뜨려야 할 알이 있다는 사실과 그 알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성장은 확장이 아니라 미세한 균열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균열은 당장 삶을 뒤흔들지 않지만 오래 남아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의 나는 이전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고 조금 더 솔직해졌으며 조금 더 혼자가 되었다.

etienne-girardet-KzTuBks7IWc-unsplash (1).jpg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