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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은 완전히 분절되어 있다.

[0일 차] 서울역 - 더하우스 1932

by 글객
나의 시간은 완전히 분절되어 있다.


산티아고로 떠나는 나의 심정은 이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 문장에는 원인이 드러나 있고 결과가 내포되어 있다. 매일에 주어지는 나의 시간은 산산이 조각 나 있고 조각난 시간은 이어 붙일 수 없다. 충분한 시간 동안 잠수를 해야만 바닷속 깊이 들어가 진주를 따올 수 있는 것처럼 분절되지 않은 시간에서만 무엇인가를 오롯이 발견해 낼 수 있다. 마음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그러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한다.


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그에 할당하는 시간은 좁쌀처럼 작아만 진다. 진정한 의미의 멀티플레이란 불가능하다. 그건 그저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댐의 구멍을 막고 있을 뿐이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창의와 창조는 서로 다른 무엇인가의 연결로부터 발생하고 연결은 자기 자신의 내면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만 찾아지고 발생된다.

어쩌면 탁월함을 찾고 싶어서 일 것 같다. 시나브로 사라져만 가는 듯한 자기 자신의 재능. 나의 재능은 어떤 환경에서 발현되고 성장하고 증폭되는지. 또 회복되는지. 그에 대한 탐구. 그러한 환경은 꼭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이여만 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것이 가장 확실한 확률처럼 느껴질 뿐이다. 내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낯선 곳으로의 이동. 사람과 사물 그 모든 존재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간섭, 그것을 최소화하는 어떤 시공간적 지점. 어쩌면 그뿐이면 될 일이다.


출국 하루 전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펜 대를 휘날렸다. 준비할 게 아직 남아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내가 떠나려 하는 이유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앞 당겨 그러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Nujabes의 음악들을 들으며 창가를 응시하고 떠다니는 생각들을 펜으로 토해낼 때 온전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지는 안락함에 벌써부터 눈물이 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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