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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객 Jun 18. 2024

영혼의 허기

[10일 차] 사리아 알베르게

순례길을 걸으면서 끼니를 챙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사실 그건 일상에서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사 먹는 것과  해 먹는 것. 경제적인 관점에서 매 끼니를 식당에서 사 먹기 어려운 것처럼 순례길에서도 매 번의 끼니를 식당에서 해결하기는 부담스러웠다. 더불어 폰페라다에서의 경우처럼 타고난 성정이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탓에 조용하게 한 끼를 챙길 수 있는 식당이 아니고서는 알베르게에서 식사를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음식을 해 먹는다기보다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끼니를 챙겼다. 규모가 있는 도시들은 그에 걸맞게 큰 마트들이 있었다.


사리아는 순례길 중에서 꽤 끈 도시였다, 순례길 완주증은 최소 100km를 걸어야 받을 수 있는데 사리아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10km가 되는 지점이어서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순례자들이 사리아부터 그 발걸음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만큼 이 도시에는 그 이전의 마을이나 도시들보다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도시의 수용력도 그만큼 높았다.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마트도 다양했다.

혼자서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기에는 제품으로 나온 샐러드가 으뜸이었다. 채소와 작은 빵조각 그리고 닭가슴살이 들어있는 시판 샐러드는 균형 잡힌 식사가 되어주었다. 사리아에서는 여기에다 연어를 첨가해사 먹었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조에서 샀던 바게트빵과 요구르트 하나도 함께였다. 제품마다 가격표가 잘 붙어있고 익숙한 공간 디자인과 진열방식으로 손님을 맞는 프랜차이즈 마트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필요 없는 곳이어 잠시나마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어줬다. 인간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의 의미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긴장을 완화한다는 차원에서 장을 보는 것은 단순한 쇼핑을 넘어 정신적인 휴식의 의미가 됨을 느꼈다.

순례길을 댜녀온 사람들의 이런저런 후기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다. 순례길을 걸으면 생각보다 많이 먹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들. 물론 사람마다 그 차이는 있을 것 같지만 나의 경우도 그러했다. 많이 먹지 않기도 했고 많이 먹지 않으려 하기도 했다. 많이 먹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배고프지 않아서였고 많이 먹지 않으려 한 것은 다음날의 경쾌한 출발을 훼손하지 않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아침에 걸을 때는 허기가 지면 가지고 있는 간식을 먹거나 바에 들려 간단히 무엇인가를 사 먹곤 했지만 저녁으로는 크게 무엇인가를 먹지 않았다. 정 배가 고플 때는 요구르트를 하나 먹는 정도였다.


순례길은 하루에 2~30km 정도 대여섯 시간을 걷는 과정이었다. 뙤약볕을 맞거나 언덕을 올라야 할 때는 땀도 많이 나고 더 지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평소보다 육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과정인데 과한 곡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곡기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향하고 있었음을 말하지 않을까. 신체가 허기진 것이 아니라 영혼이 허기졌기에 우리는 그렇게 무엇인가를 입으로 들이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영혼의 허기를 식사로 채우려 했으니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혼의 허기는 영혼을 채우는 것으로만 해결되기 때문이다.


순례길은 표면적으로는 매일매일 걷고 쉬는 과정의 반복에 불가하지만 그 길 위에서는 삶의 다양한 진리와 교훈 깨달음들이 터져 나오곤 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것, 우리가 알고 살아야 하는 것,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해악과 거짓들. 순례길은 나를 둘러싼 어두운 먹구름을 걷어내고 그 위를 비추고 있던 따사로운 태양을 발견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매년 한 번은 순례길을 걸어야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이유도 그 길 위에서 버려지는 나쁜 것들과 그 길 위에서 얻게 되는 수많은 좋은 것들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이 길을 걸을 때마다 그러한 과정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면 수차례씩 순례길을 걸었다는 선구자 분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굳이 유추하려 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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