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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객 Nov 19. 2024

잘못된 길에서 시작된 마지막 여정

[15일 차] 오 페드로우소 공립 알베르게 출발

잘못된 길에 들어선 느낌은 처음부터 받았었지만 그것을 인정한 시점은 그 길을 꽤나 걸어온 뒤였다. 오 페드로우소 공립알베르게를 떠나 산티아고로 향하는 마지막 날은 그렇게 잘못된 길을 걷는 것으로 그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느꼈던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었던 감정은 이미 걷는 것으로 자동화된 두 다리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알베르게를 나와 이제 막 마을을 벗어나려는 순간 비슷한 시점에 하루를 시작하는 두 그룹의 순례자들을 발견하였다. 하나의 그룹은 마을을 관통하는 큰길을 따라 정방향으로 걷고 있었고 또 하나의 그룹은 반대방향으로 걸으며 내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그들과 이내 마주친 곳은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는 샛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그 샛길을 따라 나가며 그들은 나의 시야에서 단번에 사라져 버렸고 나는 걷고 있던 방향과 관성을 유지한 채 큰길에서의 발걸음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혹시나 내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건 아닌지 순간적으로 의심이 들었었지만 한 그룹 정도의 행동만으로는 나의 판단을 전복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걷고 있었던 길은 차가 다니는 도로의 귀퉁이였다. 우리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정방향으로 걷고 있었다고 말한 두 사람의 남자와 그들과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가던 나까지를 포함한 말이다. '차가 다니는'이라는 표현보다는 '차가 다닐 수 있는'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시골에 가까워서인지 아니면 이른 아침이어서 인지 실제로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은 그 길을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이었고 오른쪽 먼발치에서 보이는 또 다른 길 위에 훨씬 더 많은 순례자들이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부터였다. 처음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나 나무들 때문에 멀찍이 존재하는 그 길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길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약간의 불안한 감정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그러나 먼발치의 그 길을 발견한 순간은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전까지 느끼고 있었던 약간의 불안한 감정은 그 길을 발견한 순간 비슷한 크기의 안도감으로 전환되어 갔다.


구글맵만 켜봐도 이 길이 완전히 어긋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곳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알아낼 수가 있는 상황 속에서 작기는 하지만 불안한 감정을 느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까.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동떨어져있음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공포는 이룩한 문명과 거쳐온 진화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인간의 뇌 속에 남아있는 낡은 인식의 프로세스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굳이 스마트폰을 꺼내 이 길이 맞는지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지 모르겠다. 가는 곳이 뻔한 이 한적한 시골길에서 그 길이 잘못되어 봐야 얼마나 잘못될 것인가. 방향이 맞는 것인지 결국은 옳은 길로 이어지는 것인지와 같은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불안함이니 굳이 그 논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불안함 자체가 이성적인 불안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에 동요하지 않은 채 그냥 그 길을 계속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동떨어짐을 대처하는 마음과 행동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 길로 들어선 순례자는 두 남자와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빠른 발걸음으로 나를 지나친 한 서양의 여성 순례자였다.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이 여성 순례자도 어느 순간 이 길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부터 자신의 불안함을 여러 가지 행동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그 올바른 길을 계속해서 주시하거나, 가던 길을 멈춰 서거나, 혼잣말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계속 꺼내보는 등 종합적인 뉘앙스로 자신의 마음상태를 전달하였다. 그와 달리 제일 앞서서 걷던 두 명의 그 남자는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웃음소리를 교환한 것을 제외한다면 눈에 띄는 행동 변화 없이 가던 길을 계속해서 걸어만 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나 걸었을까. 멀었던 두 길은 이윽고 하나의 교차지점을 형성하며 만나게 됐고 잘못된 길을 걸었던 나를 포함한 순례자들은 본류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순례자들 무리로 다시금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의 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떤 모습이어야 우리 삶에 도움이 되고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낼까? 되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그 길을 걸었고 계속해서 걷자니 불안함이 차오르는 순간들. 어쩌면 정답은 그 잘못된 길을 계속해서 그냥 걷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요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계속해서 걷는 것. 주저하거나 주저앉지 말고 걷던 대로 걷는 것.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 밖에 없으니 오히려 그 길을 최선을 다해 걷는 것이 조금 더 빨리 우리를 그 길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을까. 불안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불안함을 해결하려고 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불안함을 가속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그 길을 걷는 것만이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목표점이 분명하고 방향성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걷고 또 걷는다는 이 추상적인 개념은 우리를 다음의 교차지점까지 계속해서 안내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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