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라이스의 음악에 심취했던 카페를 나와 얼마 지나지 못해 나는 길 위에 있는 한 벤치에 잠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여느 때와는 달리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올 때 신발에 그랜즈레미디 파우더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파우더는 오래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던 직장 동료로부터 추천받은 제품이었는데 신발을 건조하게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했다. 맨발에 바르는 바셀린과 두꺼운 양말 그리고 이 파우더까지 더해져 나의 발은 순례길을 걷는 내내 거의 물집 한 번 잡히지가 않았다.
벤치에 앉아 파우더를 뿌리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 순례자는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 분이었다. 이틀 전 포르트마린을 떠나는 날 아침 알베르게 1층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여자분이었다. 사립 알베르게를 예약하기 위해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나에게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 있냐?"라고 물었던 분이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pilgrim의 뜻이 순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었다. 나중에 곱씹어 보니 순례길을 걷는 중간에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던 분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세실리아. 당연하게도 한국인인 줄 알았던 그녀는 사실 오래전 캐나다로 이주한 이민자였다. 그녀는 굉장히 외향적이어서 순례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순식간에 친분을 맺는 스타일이었는데 이때부터 나도 그녀가 친분을 맺은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이 됐다. 몇 번의 스쳐 지나갔던 마주침과는 다르게 그날은 하루종일 세실리아와 함께 순례길을 걸었다. 나중에 만나게 된 그녀의 남편 제이도 함께였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던 이유는 실제로 그녀가 남편과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르토마린 공립알베르게에서 체크인을 기다릴 때 그녀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한 여성 순례자와 함께 있었는데 그때 그녀의 남편 제이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다른 길을 걷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다른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함께이면서도 독립적인, 아주 느슨하고도 긴 줄에 묶여 있는 두 사람처럼 서로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지만 그 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서로 독립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는 글로벌 커플이었다. 그녀의 남편 제이는 그녀가 이민을 가서 만난 캐나다인이었다. 체구가 육중하고 나이에 비해 첫인상이 꽤 젊어 보이는 사내였다.
세실리아를 한 마디의 키워드로 정의하자면 '언어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녀는 한국어와 더불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구사하는 외국어들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그 태도가 만들어내는 인생의 행보가 잘 담겨있는 어떤 결과물들이었다. 어렸을 때 한국의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히게 됐다는 그녀는 영어를 하지 못하면 일정 수준 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되자 무작정 영어를 배우기 위해 캐나다로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영어를 배우기 위해 떠난 캐나다에 서 또 다른 삶의 뿌리를 내리게 됐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본토 미국인들과도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녀는 현재 한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스페인어의 경우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흥미가 생겨 배우게 됐다고 했다.
"여기가 언어 배우기는 너무 좋아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한 마디씩 맘 편하게 던져볼 수 있잖아. 다른 사람 만나면 똑같이 또 던져보고. 완전히 영어 회화의 산실이지."
그녀가 말하는 언어를 익히는 가장 기초적인 태도. 즉, 생각나는 대로 일단 던져보는 태도는 우리가 언어 학습에 관하여 어딘가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클리셰와도 같은 방법론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 자신의 인생에 완전히 녹여서 실천해 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서로 완벽하게 다른 결과물 앞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그녀의 언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다방면의 언어를 잘할 수 있는 데에는 그녀의 극도로 외향적인 성격이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이 공간은 내향인에게도 누군가에게 한 마디씩 던져볼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하기는 했다. 내향인들에게는 한 번 보고 말 사람이 더욱 편하게 느껴지는 오묘한 감정이 있지 않은가? 모르긴 몰라도 이 대목을 공감할 수 있는 내향인들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날 점심은 그녀의 제안으로 '뿔뽀(Pulpo)'를 먹게 되었다. 뿔뽀란 스페인어로 문어를 말하는데 순례길이 가로지르는 갈라시아 지방은 스페인 북쪽의 해안가 지역이고 그래서 문어요리가 유명하다고 했다. 사실 그녀가 처음 식사를 같이하자고 제안했을 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 없이 동의했었는데 그녀의 또 다른 지인인 미국 순례자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안식처가 되어야 할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이 고도의 긴장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경험 상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보다 영어 모국어인 사람과 대화하는 게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영어 회화 대한 수준이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 비슷한 수준의 단어와 문장으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훨씬 덜 하지만 모국어인 사람과 대화를 하면 여러모로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빠른 속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휘, 그리고 구어체가 양산하는 자질구레하고 쓸모없는 표현 등은 상대 발언의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언어적 단절이 만드는 어색한 기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면 깊숙하게 파묻혀 있던 그 어떤 외향성과 영어의 실마리들을 끄집어내며 대화를 이어가려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다. 알아듣지 못한 문장에서는 대화를 이어가기보다 새로운 주제를 꺼내 화재를 전환하고 때로는 대충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알아듣지 못함에 대해 나는 개이치 않는다는 뉘앙스를 전하기도 하며 그 길고도 짧은 시간을 어찌 저찌 가까스로 잘 견뎌냈다. 그런 나와 달리 세실리아는 영어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에게는 가끔씩 한국어를 던졌고 가게의 점원들과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는 등 3개 국어를 넘나드는 여장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의 소금으로 절이다시피 한 문어요리와 반찬으로 시킨 고추 구이는 기본으로 나오는 빵을 잔뜩이나 씹어 넘겨야 겨우 짠기를 달랠 수 있었는데 그 짜디짠 음식이 어떻게 입에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문어를 싫어하는 그녀의 남편 제이가 식사를 하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는 점이었다. 제이까지 식사시간에 함께했더라면 영어와 스페인어가 난무하는 언어의 늪에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한참이나 순례길을 동행했던 그녀와는 굉장히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 덕에 캐나다라는 나라가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녀가 그녀의 남편 제이와 부부로서 어떻게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것은 역시 그녀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태도였다. 언어란 재능이 아니라 생각을 떨쳐버리는 태도에서 발전하는구나. 그리고 그렇게 무엇인가를 맘 껏 던져보는 행동을 통해 우리는 억눌린 무엇으로부터 치유된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나는 벌써 여러 번 순례길을 왔는데 여기가 완전히 테라피의 공간이라니까
나는 그녀의 커플과 다음 목적지인 아르수아에 거의 도착하기 직전에 헤어졌다. 순례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또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처럼 그녀의 커플과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작별했다. 그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나에게 세실리아는 "See you later Min!"이라고 작별인사를 보내줬다. 남편의 이름을 제이(J)라고 줄여 부르는 것처럼 Min(민)은 처음 그녀와 통성명을 할 때 정했던 내 이름의 약칭이었다.
하루종일 그녀와 이야기한 덕분에 이 날은 사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던 그 짭짜름한 뿔뽀와 고추 구이 사진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