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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balCityRnD Aug 12. 2022

영화 '기생충'을 보고

혁명이냐? 건축이냐?

     한국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4개나 수상한 영화 '기생충'이 장안의 화제이다.  급기야 국내 관객수 1,000만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사회적으로 상류층과 빈민층의 주택을 둘러싼 계급적 대립과 풍자가 이 영화의 주요 모티브가 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거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위계성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도시건축을 연구하고, 그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 '기생충'에는 누구나 살아보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사각형 모양의 청결하며 모서리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마무리된 모던한 저택이 등장한다.

     저택의 외벽면은 비단결처럼 고운 콘크리트로 마감되었으며, 고급 목재로 마루와 천장이 이루어졌다. 부엌에는 유도식 전열판과 온도를 조절하는 와인 저장고가 설치되어 있고, 고가의 그라나이트로 덮인 아일랜드 식탁이 있다. 거기에 더해 출입문 근처에는 대나무 울타리로 둘러싼 우아한 내부 정원과 하늘을 향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상류층 주택의 현관 출입구를 떠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영화는 기택(송강호 분)의 반지하 집에서 시작한다. 영화 속의 반지하는 서울의 어느 도시재생 지구의 한 동네를 연상시킨다. 4단으로 나누어진 더러운 창문 앞에 널어놓은 양말들, 도로면과 같은 높이의 창문을 통해 거리가 내다 보이고, 어수선하게 넘어질 듯이 벽에 높이 쌓여 있는 피자 상자들 그리고 전기선이 천장과 벽을 뚫고 이어지며, 2단으로 나누어진 상단에 목욕 욕조가 아닌 용변을 보는 것이 공개된 변기 대가 설치되어 있는,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누추한 서울의 반지하 주택의 모습이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은 그가 제작한 일련의 영화 '플란더스의 개', '괴물', '마더'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은밀하게 숨겨진 버려진 공간이 있음을 드러냈다. 이번 '기생충'에서도 반지하주택을 통해 숨겨진 공간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노출시켰다. 반지하 주택은 폭우가 쏟아진다면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간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모두가 박사장이 살고 있는 저택과 같은 고급주택에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기택이 살고 있는 반지하 주택에 살고 싶어 사는 사람도 없다. 

     시민이 거주하는 도시건축은 사회의 불평등과는 상관없는 심미적이거나 위생적인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아카데미 영화상은 박사장 가족이 거주하는 '미니멀리즘'-부족해도 충분하다(less is more)- 스타일의 호화주택과 서울의 반지하 주택을 주요 무대로 하는 '기생충'에 오스카 상을 4개씩이나 수여했다. 왜 일까?

     영화에 등장하는 고급 상류층을 위한 주택은 부와 고상함을 과시하기 위해 가구에서 목욕 욕조에 이르는 모든 상징물들을 '미니멀리즘' 스타일로 배치했다.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 건축을 개척했던 '미스 반 데로우(Mies Van Der Rohe)'의 건축 철학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부족함은 어떤 열망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단순성의 미학은 있는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고, 지속가능성이 불가능함을 숨기는 속성이 있다. 박사장 저택이 갖고 있는 단순성은 지하실의 불안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

     박사장 가족은 그림 같은 정원이 딸린 저택에 살고 있지만, 기택이 살고 있는 반지하 주택은 최소한의 채광이나 주거기준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의 수가 전체 주택의 6%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기택이 살고 있는 반지하 주택의 창문으로는 소독차량의 연기와 거리의 먼지, 홍수 때는 빗물이 들어오지만, 박 사장 주택은 널찍하게 잘 손질된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시원한 창문을 갖고 있다.

     부유한 박사장 가족과 피자 상자를 접는 가내 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기택 가족, 하늘과 땅처럼 차이나는 삶이 대립하는 계급적 긴장을 영화는 도시 주택의 대비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택의 가족이 박사장의 호화로운 저택으로 벌레처럼 기어 들어가 무슨 일이라도 벌일 음모를 꾸민다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의 사회적 격차는 화해할 수 없는 정도이니까. 그러나 홍수 때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한 밤중에 내려오는 장면은 기택 가족의 열망이 실현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21세기에 혁명은 불가능 해졌는가?





     건축가이며 도시계획가인 르 꼬르뷔제는 20세기 서구 각국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건축을 할 것이냐? 혁명을 할 것이냐?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도시건축 전문가들은 르 꼬르뷔제가 100년 전에 제기한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21세기 서구 선진국 수준의 도시주거환경, OECD 10위권의 성공적인 도시발전 모델 국가로 대접받을 수 없을 것이다.

     도시건축이 사회적 불평등에 깊이 개입해 있으며, 인간의 주거권이 얼마나 중요한 보편적 가치인지를 영화 '기생충'만큼 잘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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