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 보니 알게 되는 것
토요명화를 보던 밤이었다. 내용도 제목도 기억 안나는 외국영화였는데 오직 한 장면만이 여섯 살이던 나의 뇌리에 돌판에 새겨지듯 뚜렷이 남았다. 주인공이던 아이의 엄마가 돌아가셔서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땅에 관을 묻는 장면이었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죽음은 단절이라는 것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다름 아닌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도. 나는 순간 심장이 발바닥 밑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은 마흔이 된 지금까지 생생하다), 죽음이라는 어떤 실체가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엄마는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화장실까지 단숨에 달려가 그 문고리를 부여잡고 문을 쾅쾅쾅쾅 두들겼다.
"엄마, 엄마, 엄마!!"
"왜? 무슨 일이야?" 엄마는 욕실 안에서 대답했다.
"엄마, 엄마도 죽어?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돼?"
화장실 문틈 사이로 삐져나오는 뜨거운 수증기가 엄마의 새어 나오는 숨결 같았다. 나는 황급히 그 수증기를 발로,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는 문고리에 온몸을 매달고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물었다. "엄마도.. 죽냐고..."
"얘가 무슨 소리야, 엄마가 왜 죽어."
엄마가 나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감지한 나는 곧장 안방으로 달려가 방 한쪽 구석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키고 웅크려 앉았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쳐댔다.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MBTI의 J 중에서도 super J 인 나는, 어렸던 그때도 '그럼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본능적으로 세웠다). '엄마가 죽으면 나도 바로 따라 죽으면 돼.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에 가서 떨어지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 거고 그럼 난 바로 엄마한테 갈 수 있을 거야.'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의 나로서는 엄마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으며, 고층건물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하늘을 나는 기분일 거라는 생각에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거기까지 계획이 세워지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렇게 하면 되지.' 실제로 엄마에게 (아니, 그 누구에게도) 이런 얘기를 털어놓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는 어찌 보면 늘 죽음에 대한 대비를 마음에 품고 살던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나에겐 죽음보다도 더 실제적이고 극단적인 공포였으니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에 대한 심적 의존도가 높았던 나에게도 동생이 태어났고, 엄마의 바쁜 사업이 시작되었고, 나의 유학생활도 시작되었다. 열여섯에 엄마와 헤어져 미국으로 오면서 엄마는 그때 나를 시집보낸 것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육체적, 물리적 뿐만이 아닌, 심리적 독립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였다. 속마음은 누구보다 엄마에게 집착했던 나는, 어쩌면 죽음을 대비했던 그 여섯 살 때. 엄마와 헤어져야 했던 그 열여섯 살 때. 그때에 머무른 채 어른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삶에 엄마는 필요 없는 척. 강한 척. 독립적인 척. 그런 척들을 하며 아직도 마음 한켠 어딘가의 문고리를 부여잡고 새어 나오는 수증기를 온몸으로 막으며 오래도록 서 있었다.
어른이 된 내 앞에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엄마가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재잘재잘 말도 잘하고, 잘 웃고, 잘 울고, 농담도 잘하는 나는, 엄마와 함께 있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좀 해봐" 엄마가 물으면
"잘 지내. 맨날 똑같지 뭐." 하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넌 엄마한테 할 말도 없니?"
"엄마도 나한테 할 말 없잖아." (마음에도 없는 이런 말이 꼭 먼저 튀어나와 버린다)
그러면 엄마는 텅 빈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외롭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다 내 잘못이야'라고 자책하는 거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일단 모르는 척했다. 아는 척을 하면 다시 그 여섯 살의 아이가, 열여섯 살의 소녀가 뛰쳐나올 테니까.
엄마는 어딜 가나 당신이 나의 엄마라고 소개 되어지고 싶어 했다. 엄마의 대한 소개가 조금만 늦어도 서운해했고, 그 서운함의 여운은 오래갔다.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제 와서 왜? 이제까지 독립적으로 잘 컸다고 좋아했으면서. 내가 필요했을 땐 한 번도 옆에 없었으면서. 나보다 일이 더 중요했으면서. 왜 이럴 땐 제일 먼저 "윤승이 엄마"가 되고 싶은 거지? 이런 세상천지 나쁜 년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참 별것도 아닌 일에 서운해하는' 옹졸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난 4월 봄방학 때 내 딸 하엘은 아빠와 함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첫 의료선교를 다녀왔다. 바쁜 어른들만 많은 곳에서 시키지 않아도 다람쥐처럼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자기가 도울 일을 잘 찾아내고, 어딜 가든 기분 좋은 웃음과 유머감각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 낸 하엘은 사랑을 주러 갔다가 오히려 그곳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돌아왔다. 특히 그 단체의 디렉터로 계시는 선생님은 나의 친정엄마(하엘의 외할머니)와 동갑이신데 하엘을 품에 안고 재워주실 만큼 친손녀처럼 지극히 예뻐해 주셨다.
처음으로 열흘 가까이 떨어져 지내다 돌아온 하엘을 나는 온 마음으로 환대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디렉터 선생님은 하엘이가 보고 싶다고 영상통화를 걸어오셨다.
"하엘아, 집에는 잘 도착했니? 벌써 보고 싶다. 집에 가니까 좋지? 엄마는 뭐라고 하시니?"
"엄마요? 음... 엄마는... she didn't say anything (별말씀 없으셨어요)."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 그랬구나.."
문 밖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귀가 코끼리 만해졌다. '뭐어?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내가 자기를 얼마나 반겨주고 칭찬해줬는데! 내가 아무 말도 안 했을 리가 없잖아! 쟤가 지금 컸다고 남들 앞에서 쿨 한 척하는 건가? 왜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지?' 혼자 부글부글 거리며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하엘에게 가서 따지기 시작했다. 너 왜 엄마를 소개하지 않았냐고. 왜 실제와 다르게 얘기했냐고. 왜 엄마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냐고.
하엘은 당황한 듯 토끼 눈이 돼서 말했다, "아. 미안해 엄마. 내가 왜 그랬지? 일부러 그런 건 정말 아닌데,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셔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다 보니까 말이 그렇게 나왔어. 내가 왜 그랬지 진짜? 엄마 정말 미안해."
순간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서운해서가 아니라. 억울해서가 아니라. 이제서야 나의 엄마 생각이 나서. 내가 엄마한테 했던 말들이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와서. '참 별것도 아닌 일에 서운해한다'며 외롭게 엄마를 세워뒀던 자리에 이제는 내가 고스란히 서있어서. 위로는 나의 엄마에게 '왜 이제 와서 윤승이 엄마가 되고 싶냐'며 비수를 꽂아 놓고 아래로는 나의 딸에게 '왜 나를 하엘이 엄마라고 하지 않았냐'고 또다시 시퍼런 비수를 꽂았다.
매년 여름 한국에 나갈 때마다 일 년에 한 번 엄마를 만난다. 천하 대장부 같던 엄마가, 세상 꼿꼿하고 절대 지지 않던 엄마가 작아지고, 약해지고, 굽혀지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그저 엄마가 연세가 드셔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엄마가 바뀌었나 보다, 오만하게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겪어 보니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건 엄마가 약해져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아닌, 내가 이제껏 딸로서 참아지고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른 아무 이유 없이, 내가 고아가 아닌 딸이라서. 내가 아무리 고고한 척을 하고, 유식한 척을 하고, 잘난 척을 해도. 엄마에겐 여전히 여리기만 한 여섯 살짜리 아이였고 아직도 미안하기만 한 중학생 딸이었다는 것을. 내가 그렇게 가시 돋친 원망을 함에도 무조건적인 용납을 받아 온 존재라는 것을. 엄마가 나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아니라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는 사실 성공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도 윤승이 엄마가 되고 싶었다는 것을.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던 날의 기억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니 한평생을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장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죽음을 대비하자고 몰래 다짐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황급히 나오느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와 젖은 옷을 입고 내 곁으로 왔다. “윤승아, 죽으면 영원히 헤어지는 게 아니라 잠깐만 헤어졌다가 하늘나라에서 또 만나는 거야. 거기 가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엄마 아빠도, 헤어졌던 사람들도 다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뜨겁게 날 안아준 엄마의 내음만으로도 악몽에서 깨어난 듯 일순간 마음이 날아올랐다.
엄마는 내가 필요했던 순간엔 부재했을지 몰라도, 늦게라도 다가와서 꼭 나를 품어주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러운 기억, 원망스러운 마음, 비뚤어진 감정만이 잔여물처럼 끈질기게 남고 따뜻했던 기억은 쉽게 휘발되고 말았을까. 내 안에 끊임없이 속삭이던 '넌 고아야. 넌 혼자야. 아무도 널 돌봐주지 않을걸'이란 거짓말은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엄마를 오해하게 만들고 이제는 나의 딸에게까지 그 결핍의 상흔을 덧입히려 했다.
엄마의 자리에 섰을 때 알게 된 것.
겪어 보니 알게 된 그 진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네 엄마가 되고 싶었어.'
나는 이제라도 그 딸의 자리에 돌아가 내 몫의 사랑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끝이 아니듯, 지금부터 그 생명으로 옮겨갈 것이다. 나의 엄마, 나의 딸과 함께.
• Soli Deo Glor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