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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Jun 10. 2018

나는 글로마드를 꿈꾸는구나

새로운 유형의 나를 발견하고 준비하기

글로마드(Glomad)

1) 글로벌 부족(Global nomads)의 약자로,
여러 국가에 체류한 경험이 있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새로운 유형의 세계시민

2) 글을 안 적으면 가시가 돋치는 사람(글로mad)


스스로 지향하는 삶의 형태가 '글로마드'라는 걸 깨달은 날, 힌트는 3가지였다. 그리고 이 글은 다양한 잠재적 글로마드들을 만나고 싶은 나의 소개서이다.


1. 책 <글로벌 코드>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 마케팅 구루로 불리는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컬쳐 코드> 다음으로 쓴 책이다. 사실 '글로벌'이 들어가는 책 제목은 진부했다. 하지만 '글로벌'과 '마케팅'을 논하는 학자가 정신분석학자라니. 심리학자가 쓴 책이라면 그저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펼친 책에서 저자는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글로마드의 허브로 끊임없이 소개했다.


도시국가, 예측가능성, 영어, 다인종, 디지털


내가 잠재적 글로마드여서 싱가포르가 이토록 끌렸던 것일까. "왜 싱가포르야?"라는 질문을 부모님, 친척, 친구들, 친구들의 부모님, 선후배들로부터 수없이 받았다. 이유야 개인적인 사정부터 뉴스에서 언급되는 이슈까지 10가지가 넘었지만 종종 너무 주절주절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책으로 또 하나의 대답을 찾았다. "난 글로마드를 꿈꾸니까!"


저자와 컬처 코드에 대한 소개는 <글로벌 코드> 속 서문을 빌린다.


발견은 내 삶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가장 중요한 원형(사랑이나 건강, 돈)을 바라보는 관점이 각 개인이 성장한 문화 고유의 무의식적인 메시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깨달음을 기반으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그 연구의 결과물이 바로 컬처 코드이다.

컬처 코드란 우리가 속한 문화를 통해 특정한 대상(자동차와 음식, 관계, 나라 등)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이다. 왜 미국에선 인기를 끈 스포츠카가 프랑스에선 외면당하는지, 전통차를 마시는 일본인에게 커피를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컬처 코드인 것이다. 이 코드는 각자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경험한 문화를 통해 획득되기에 문화가 다르면 코드도 다르다.

세상은 개개의 문화를 넘어 글로벌적인 무의식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는 시기에 이르렀다. 나는 각 문화마다 고유의 독특한 코드가 나타나는 동시에 공통적인 성향을 보이는 강력한 코드가 있음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 글로벌적인 무의식을 '글로벌 코드'라고 부르고 컬처 코드와 동등한 지위에 놓기로 한다.



<글로벌 코드>에서 라파이유는 '글로마드'란 여러 국가에 체류한 경험이 있고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글로벌 부족이라 말한다. 이들은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도 자유롭게 구사하며 유연한 태도로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책에서 와닿는 한 문장 한 문장에 표시를 하다가 포기했다.


이 책 전부가 내가 열광하는 삶이잖아.
글로마드는 여행에 열광하고,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멋지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 국가마다, 문화마다, 서로 다른 독특한 의식과 일처리 방식이 있음을 여행을 통해 배우고 자신만의 지식으로 만든다.

그들은 잡담과 구애가 도시마다, 국가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어떤 주제가 대화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지, 혹은 더욱 활발하게 자극할지 잘 이해한다.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세계 시민을 대표한다. 자신의 고향에 강한 연대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여러 대륙에 걸쳐 살아가고, 또 자주 여행을 다닌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첨단 커뮤니케이션 장비를 갖추고 세상 모두에 대한 지속적인 접근을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이들에게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별 의미가 없다. 이들은 특정한 사회적 감성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지역이 제공하는 혜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산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끼며, 자주 찾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성장한 지역을 고향으로 인정한다.

그들은 호텔에 묵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디에서 묵을 생각입니까?"라는 질문은 "누구와 함께 지낼 겁니까?" 혹은 "어떤 나라에서 만난 친구의 초대를 받아들일 겁니까?"라는 질문과 대답이 같다.

클로테르 라파이유, <글로벌 코드>


올해 7월 갑작스럽게 30일 체류 비행기표를 사고 싱가포르로 가게 됐다. 너무 급하게 결정한 일정이라 일일이 친구들에게 알릴 여유도 없었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밤 10시, whatsapp 그룹채팅방에 항공기 사진과 함께 싱가포르에 가고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새벽 5시, 3년 반 만에 다시 찾은 창이 공항에서 Kevin과 Alicia를 만났다. 메세지를 보내고 사라진 나에 대해 그룹채팅방은 "진짜야?" "얘 오늘 온다는 거야?"라는 질문에 이어 "픽업하러 갈 사람?" "내일 공항들렸다 출근해야겠다"라는 따듯함으로 가득찼다. 그렇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Kevin은 나와 Alicia를 집에 내려주고는 학교로 출근했다.


대학생 때, 싱가포르에 와서는 Alicia네 집에서 1주일간 머물렀다. 홍콩에서는 Rexy네 집에서. 하지만 이제는 학생도 아니고 일하는 친구들 집에 머물기가 미안하고 눈치도 보여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이번 싱가포르 체류기간 동안에는 Alicia의 집, Steffi의 집, Stefan의 집, Kevin의 집에 초대받았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위 질문처럼 과분하게도 싱가포르 독립기념일(8/7)에는 동시에 여러 친구들의 초대를 받아 가장 먼저 초대해준 친구네 집에 가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지금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몇 개 국어가 가능한가? 얼마나 많은 모임에서 활동하는가?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머무를 곳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기업에서 일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셋 혹은 그 이상'을 말하고 싶다. 그게 분명 가능함을 안다. 하지만 한국에서 2030대의 나이에 이게 가능할지는, 필요할지는 잘 모르겠다.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리고 이 능력이 가진 이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부류다.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이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나는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다. 쉽게 문화를 말하고, 자주 여행을 다니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여러 국가에서 일하고 거주한 경험이 있으며,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는 삶을 원한다. 나는 글로마드를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



2. 잡지 '모노클'


영국 잡지 <모노클>은 영어로만 발행하고, 런던과 뉴욕, 토론토, 도쿄, 홍콩 등 대도시에 '모노클 숍'을 만들어 정기구독자를 대상으로 여러 프로그램과 상품 판매를 진행한다. 종이 잡지사들이 온라인 매거진으로 사업을 바꿀 때, 종이 잡지 판매로 매년 35%의 성장을 이루어 출판계를 관심을 모았다.


무엇보다 타깃 구독자층에 대한 정의가 흥미롭다.


싱가포르에서 친구가 건네준 MONOCLE 2017 JUNE호


모노클의 타깃 구독자층은 "국적, 인종, 나이에 상관없이 영어로 교육받고 영어로 일하는 평균 연봉 3억 이상, 1년에 해외 출장을 10번 이상 가며 MBA를 졸업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금융, 정부 기관, 디자인, 관광 산업의 CEO"이고 발행 원칙은 "다 읽고 싶은 잡지, 다 읽는데 2주가 넘게 걸리는 잡지, 그리고 또 읽고 싶은 잡지"이다.


한 달 전, 이 잡지를 싱가포르에서 처음 읽었다. 싱가포르에서 50일을 머물다 한국에 귀국하는 날, 공항에 데려다준 친구가 좋아하는 잡지인데 비행기 안에서 읽으라며 건네주었다. 처음 타 본 Scoot항공에는 좌석마다 모니터가 없었고 하늘 위에서 내가 가진 콘텐츠는 이 잡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이후 모노클의 타깃에 대해 듣고 무릎을 탁 쳤다. 나에게 이 책을 건네준 친구가 바로 영어로 교육받고 1년에 비행기를 10번 이상 타며, 뉴욕에서 석사를 마친,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개인 사업을 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1년에 해외 출장을 10번 이상 가는 삶을 지향한다. 아니, 1년에 1년을 해외에 나가 사는 해외 근무를 하고 싶다. 싱가포르의 글로벌 기업들은 채용공고에 expected travel(%)을 함께 기재하는데 이게 30% 이상이라면 더 눈이 간다. 싱가포르 도시국가에서는 다양한 국적, 인종의 친구들이 영어로 일하며 휴가철마다 서울만한 나라를 벗어나 해외로 간다. 글로마드가 많을 수밖에 없는 나라다. 그리고 나는 글로마드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살고 싶다.  


모노클에 대한 이해를 잘 도와주는 글 (타깃과 발행 원칙을 이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3. 습관 '글 적기'


초등학생 때 "너 글씨 예쁘다."라는 칭찬을 참 좋아했다. 나 말고도 반에서 2-3명 정도 둥근 체, 각진 체, 필기 체별로 개성있게 예쁜 글씨체를 가진 친구들이 었었다. 내 눈에 예쁜 글씨를 쓰는 싶은 친구를 보면 그 친구의 글씨체를 반영하며 내 글씨체를 더 예쁘게 고치기도 했다. 서기를 도맡아 했고 선생님께서 "학급일지가 참 보기 좋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렇게 뿌듯했다.


중학생 이후로는 매년 스터디 플래너를 썼고 앞면에는 목표 고등학교와 대학, 주별로는 명언을 찾아 적어두었다. 월-주-일별로 목표와 그날의 공부 일과를 성실히 작성했고 그 때 좋아하는 칭찬은 친구들이 "네 스터디 플래너를 보면 자극이 돼."였다.


대한민국 고3, 모두 스터디 플래너를 쓴다. 이 때,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쓰는 정사각형 D-100 캘린더 샀다. 그리고 매일 투지 넘치는 공부 명언들을 큼지막하게 써서 책상 위에 올려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정에 기름붓기 학급판'이 아니었을까.


10대의 티를 아직 벗지 않은 풋풋한 대학생 1학년 때까지 다이어리를 열심히 썼다. 매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사건이 터지던 새내기 때의 기록, 이 다이어리는 정말 보물이다. 하지만 새벽 감성으로 침대 위에서 작성한 글들은 고스란히 싸이월드에 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1년 다이어리를 끝까지 쓴 해가 없다. 싸이월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으로 '글 적기'가 분산되고 글과 사진, 영상이 혼합되어 온라인에 기록이 흩어졌다. 끝까지 쓰지 못할 걸 알았음에도 매년 새 다이어리를 샀고, 여기저기 끄적여둔 기록들이 너무 많다. 다행히 대부분 버리지 않았고 내 방 서랍, 책꽂이 구석구석 숨어있다.


2010-2017 다이어리들


글을 쓰는 업을 생각하다 기자를 꿈꾸기도 했고, 논술 시험을 통과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또 다른 직업을 2년동안 준비하기도 했다. 주로 빌려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책은 읽으며 바로바로 글을 적어두고 싶은 책이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미팅에 들어가서는 노트에 코를 박고 적기만 해 혼나기도 했다. 20년이 넘은 기록 습관이 좋을 때도 있고 다른 일의 시간을 뺏을 때도 있다. 가끔씩 혼날 마음의 준비는 하며 '글'로마드의 여정을 적고자 한다. 그리고 내년 10월엔 글로마드답게,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국제 출판 박람회에 다녀오고 싶다.


2017년 10월,
과거의 기록에 현재의 살을 붙여
글로마드의 기록을 시작한다.




라고 호기롭게 글을 적어놨는데 브런치 작가가 되어 이 글을 발행하는 건 2018년 6월 10일, 8개월이 흐른 뒤이다. 지금이라도 발행을 해 뿌듯하면서도 미리 작가신청을 할걸 하고 아쉬웠던 순간이 참 많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꾸준히 작가의 서랍 속에 글들은 모아두었던 것.


작가의 서랍 속 멋진 글을 숨겨둔 여러분, 나중을 기다리지 마시고 지금 글을 소개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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