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엄마
그녀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안다.
장녀로 태어나 먹고살기 바쁜 부모를 대신해 엄마 노릇을 했다.
그러다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결혼을 했다.
힘든 삶을 각오하게 만드는 남편의 행동과 말에 앞날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딸아이가 눈에 밟혀
자신을 위해 떠나지못했다.
엄마로, 아내로 , 딸로 , 장녀로 살아가는 삶에서 거듭되는 희생이 있었다.
매일 흘리는 눈물과 걱정을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자신의 삶에서 그녀,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47해를 살아오다 덜컥 병에 걸렸다.
지친 거다. 몸이 , 정신이 , 마음이
병명은 백혈병이었다. 백혈병 중에선 그나마 몇 퍼센트라도 가망이 있다는 유형이었지만 이겨 내지 못했다.
결국 항암으로 머리가 빠지고 , 몸이 말라갔다.
반복되는 아픔으로 너무 힘든 나머지 아들을 몰라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숨을 거뒀다.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에 제세동기를 가동하고 , 기도를 개방했다.
많이 아팠을 것이다.
시신이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가망이 없다는 말에 주치의 선생님에게 그만해주시라고 요청했다.
그녀처럼 장녀인 내가 , 그녀를 돌보았던 내가 , 눈에 밟혀 떠나지 못했던 딸아이가 자라
그녀를 간호하고
그녀의 끝에도 함께했다.
슬픔에 무너져가면서도 절차들을 진행해야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믿기지 않았다는 사실 , 사고가 모두 정지해버린 것만 같았기에 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날 무너지게 했던 것은
그녀의 기록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
나와 아들을 위해 당신이 했던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당신을 위한 그 흔한 보험 하나 들지 못했다는 사실.
당신의 부재를 상상하지 못했던 내가 받은 상처는 생각보다 컸나 보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걷지 못하곤 했다. 골반이 너무 아파서 마비가 오고 걷다가 멈추기 일쑤였다.
이러다 영영 못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3~40분이 지나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되자 나도 그때 첫 보험을 들었다. 나를 위한 작은 보험 하나.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에는 당신에 대한 사랑이 녹아있고 , 그리움이 녹아있다.
훗날 당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에 눈물짓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녹아있다.
당신이 나만 할 때에 나를 만났고 놓쳤던 것들을 해주고 싶다.
당신의 딸로 태어나 감사했고 , 감사했기에 다시 한번 당신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그때는 정말 오래 , 아주 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