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문장들
...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키워드로 분류하였고 그에 대한 지은이의 의견과 감상이 주 내용이에요. 문학 비평서를 많이 출간하는 '푸른 사상'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제가 보기엔 비평보단 에세이에 가까웠습니다.
이 책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추천하는 목적이었다면 매우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김연수 작가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저도 그의 작품을 하나 이상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죠. 지은이의 따뜻한 문장에 위로가 담긴 '요즘 감성'의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은 왜 살까요? 질문이 너무 딥해서 당황스러우시죠?
이런 질문을 듣는다면 다양한 이유가 떠오를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세상과 사회에게 받는 요구니까요.
사람이 '너는 쓸모 있는 인간이야.'라는 시선, 평가, 인정, 축하(?)를 받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목표를, 때로는 무모하면서, 허황된 목표를 갖는지 생각해보면 그깟 명제가 뭐라고...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럼 오늘날 '쓸모 있음'이란 무엇인가, 학생은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하고, 때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노후 자금은 어느 정도 모아야 하며, 몇살 때는 자산이 얼마가 있어야 하고 등등 이런 게 요즘 시대 인간의 '쓸모 있음'을 규정하는 척도이지 않을까요?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대번에 '쓸모 없는 인간'이 되버려요. 이걸 다른 말로 '망한 인생'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삶을 사는 목적이 이런 나이대별 증명서를 떼기 위한 거라면 너무 우울하지 않나요? 제 나이에 알맞은 증명서를 떼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진짜 망해요? 물론 이런 질문을 하는 저조차 증명서 떼려고 오만 짓을 했었죠... 네..
그런데 저는 근본부터 의문이 들더라고요. 도대체 그러면 얼마나 더 많은 자격을 모아야 '쓸모 있어' 지는 걸까? 애초에 쓸모 있어지겠다는 생각의 전제는 '현재는 쓸모 없다.'는 거잖아요. 지금을 살고 있는 이 현재에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 쓸모 있어지는 미래는 언젠가 다가오는 건가요? 아니라고 봐요. 현재 쓸모 없다는 명제는 계속되니까요. 뭔가를 더 얻으면, 더 가지면, 더 자격을 갖추면, 더 많은 증명서를 떼면! 쓸모 있어 질거라는 생각은 내가 미래라고 생각한 때가 현재로 왔을 때도 똑같습니다. 경험담이에요.
이런 생각은 최근에 읽은 <이유 없는 다정함, 김연수의 문장들> 이라는 책에 소제목 '쓸모'에 꽂혀서 생각이 여기까지 닿게 되었어요. 물론 내용은 전혀 달라요. 그러나 내가 생각한 소재 '쓸모'에 대해 김연수 작가는 뭐라고 했는지 궁금해져서 그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어 싶어 졌어요.
그리고 또다른 소제목 '노인'에서는 과정의 희노애락을 감각하라는 내용이에요. 과정에 무감각하다면 금새 노인이 되어버릴 거라고 말이에요. 어떤 결과만 바라던 제 가슴을 팍 치는 문장이었어요.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나만 겪을 수 있는 과정을 모두 감각하겠다. 경험하겠다. 그게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이걸 느끼면 그 감각은 온전한 '나만의 것'이 되니까. 그것만이 모두가 똑같이 떼는 증명서와 유일하게 다른, 나만이 내밀 수 있는 내 인생의 지문이 아닐까 싶어요. 살아있는 의미란 이 '경험' 자체에 있으니까요.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같은 건 없어요.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명제 자체가 틀렸으니까요. 살아서 숨쉬고 고통을 감각하고 지금 현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인생을 어떻게 재단해서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요? 진부한 결론이지만 그래서 진리인, [이 세상에 살아있음으로,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감각하고 경험하는 순간에 모든 게 가치있다.] 라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