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이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략 위 세 가지로 추려졌다. 사범대를 나왔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매일이 지치고, 게다가 대단하지도 않은 내가 저런 반응을 마주할 때면 당황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그저 네.. 하하 하며 그들과 나, 모두가 민망하지 않도록, 웃음으로 적당히 자리를 피할 뿐이다.
특수교사가 된 대단한 이유. 교사의 자긍심.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선다는 엄청난 책임감. 이런 거창한 것들을 가지고 매일의 생활을 견디기에는 현실이 너무 고단하다. 나에게는 매일을 살아낼 수 있는 작은 것이 필요했다. 그 작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학생은 170cm, 90kg쯤 되는 귀여운 얼굴의 남학생이다. 강박적 행동이 심해서 역대 담임교사들이 꽤나 힘들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학생이었다. 26살, 교직경력 3년을 향해 가고 있는 초보 여교사가 만난 T학생이다.
성격이나 외모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심지어 쌍둥이 일지라도 말이다.) 장애학생들의 특별한 행동들, 감정표현의 방식도 모두 다르다. 같은 장애 범주 안에 있더라도 한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개별적이다.
T의 특별함은 내 가슴을 태우는 행동뿐이었다. 10초에 한 번씩 화장실에 달려 나가고, 내가 담임으로 있는 교실을 탈출(말 그대로 탈출하듯이 뛰쳐나간다.)하여 작년 교실로 뛰어간다. 그리고 그 앞에 계속.. 정말 계속 쭉 서있는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지금 내가 담임으로 있는 이곳이야! 예전 교실 앞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서있는 T의 행동은 규칙적으로 해야 할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일정이 진행되는 '학교'에 있어서 적합하지 않은, 부적격 행동이었다. 용납할 수 없었고, 학급을 통제하지 못하는 담임인 내 마음은 엉망이 되어갔다. 나보다 힘이 센 사회복무요원과 힘을 합쳐 억지로, 끌고 온다. T는 어쩔 수 없이 끌려왔다가, 기회와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뛰쳐나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두려웠고, T학생이 미웠다. 담임교사의 울타리 안에 가둘 수 없는 학생의 존재는 학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즈음, 나는 교회 청년부에 셀모임(교회에 등록해 신앙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면, 셀모임이 구역모임, 목장모임의 동의어임을 알 것이다. 모른다면 셀모임은 교회에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정해준 작은 공동체 모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에 등록했다. 그동안 예배에 자유롭게 참석하다가, 나름의 결심을 하고 셀모임 공동체에 들어갔지만 그 안에서 나는 우리 반, T와 같은 존재였다.
열정적이지만 셀원들의 눈치를 보며 리더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는 셀리더 오빠의 성경공부와 이미 공동체의 친분관계가 세팅된 친절하지만 낯선 셀원들, 그리고 신규 셀원이자 그곳에서 적응해야만 했던 내가 있었다. 우리 셀은 매 주일 저녁 함께 식탁 교제를 해야 했고, 토요일에 만나 함께 캠핑, 소풍을 가는 일정이 있었다. 관심셀원인 나는 주일이 아닌 날에 공동체원들과 만나는 친목의 시간이 부담스러웠고, 리더 오빠의 계속되는 호의와 강요, 그 중간 즘에 있는 초대의 말이 미안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공동체원으로 마음 놓고 참여하기까지에 준비 운동 시간이 필요했다.
사범대에서 배운 지도 방법으로 T를 교실 안에 있게 할 수 없었다. 외부에서 진행되는 학교 밖 활동은 더 걱정이었다. 한 학급이 공동체로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 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여전히 다른 반 교실 앞에 있는 T때문이었다. 담임의 통제 밖에 있는 학생을 통해 내 무능함이 절절히 드러남이 부끄러웠다. 완벽한 공동체로 학교 일정에 참여하는 다른 반을 보면서 더욱더 T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다. T가 선호하는 것들을 활용해보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안되지만 힘으로도 도전했다. 나의 무력함을 깨닫는 순간들이 더 많고, 더 길어졌을 뿐이다.
"그날은 안될 거 같아요. 죄송해요 오빠." 거절의 순간은 매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불편한 감정이 지속된다. 평소 같으면 아쉽다, 다음에는 꼭 함께하자고 했을 리더오빠가 이번에는 장편의 문자를 보냈다. "너로 인해서 공동체가 깨지고 있어." 미리 읽을 수 있는 첫 문장을 보고 그 문자를 바로 읽을 자신이 없었다.길고 긴 문자의 핵심 문장만 엿보 듯이 쓱쓱 읽었다. 자세히 꼭꼭 씹어 읽으면 체할 것 같았다. "셀에서 진행하는 토요일 일정에 매번 거절하는 행동으로 공동체는 깨지고 있어. 너로 인해서 공동체가 분열되."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모임에 함께 해줄래?"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후자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하자. 공동체 모임에 함께해서 셀원들과 친해지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자. 물론, 리더오빠 문자의 핵심을 진정으로 이해한 것은 나에게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이후였다. 문자를 받고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나로 인해 공동체가 깨진다면, 공동체를 내가 떠나면 될 것 같아요."
사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파동은 나를 밀고 밀어 다른 교실 앞에 서 있는 T 앞까지 데려다 놓았다. 셀리더 오빠의 모습에 T를 못 잡아 두어 가슴이 타내려 가는 기다림 없는 담임교사인 내가 있었다. 새로운 공동체를 겉돌고, 정해진 자리가 낯설어 두려워하는 내 모습에 T가 있었다. 각성이라고 해도 좋고, 절박한 마음에 말도 안 되는 의미를 붙이는 정신적인 자기 위로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T를 이해해 보기로 노력했다. 그 모습을 인정해 보기로 했다. 공동체가 분열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나를 기다려주세요." 여기서 주어는 내가 될 수도, T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의 모든 일이 해피엔딩은 아니다. 여전히 말썽이 끊이지 않는 교실이었고, 그 안에서 속 타고 있는 부족한 담임교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해를 전제한 달라진 눈빛은 T학생을 향한 마음을 변화시켰다. 두려움과 꾸짖음의 눈빛이 아니라 기다림과 사랑의 눈빛을 장착하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변화였다. T를 사랑스러운 나의 학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나와 T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가끔 꿈에 T학생이 나온다. 말을 못 하는 학생인데, 꿈에서는 나에게 말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해준다. 그 곳에서는 꿈인지 모르니까, "어떻게 말을 하니?" 물으면, "이제는 말 할 수 있어요." 라고 답한다. 너무 좋아서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깬다. T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은, 이렇게도 선명히 내 내면에 자국을 만들었다.
특수교사로 11년의 시간을 걸어오면서, T는 남들에게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교직철학이 아닌, 특수교사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것을 품게 해 준 나의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