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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아 May 30. 2023

인계 듣는 방법

인수인계

“아는 자가 되지 말고 항상 배우는 자가 되어라

삶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에만 발전한다

결코 아는 자가 되지 말고, 언제까지나 배우는 자가 되어라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항상 열어두어라”

Rajneesh Chandra Mohan Jain




간호사에게 있어서 “인수인계”는 필수 불가결한 업무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수인계는 한 듀티의 일의 시작이자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간호 실습 때부터 신규간호사로서 병원에서 근무할 때까지 그 어떤 선생님도 내게 인수인계를 들을 때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들어야 하는지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궁금해하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자 한다. 뭐 이런 당연한 걸 글로 써놓고 있느냐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나 스스로가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고, 병원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둔재였기에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쓴 것이다. 일을 어떻게 하는지 다 파악이 되고 궁금한 것이 없다면 이번 편은 과감히 넘겨도 된다.

아무래도 인계에 관해서는 특수파트를 제외하여 병동에 치중해 말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응급실은 당일 들어온 환자가 언제 귀가할지의 상황까지를 간단히 인계하고, 사실 환자가 없으면 인계 없이 출퇴근하기도 해서 제외할 수밖에 없고, 수술실 또한 9시 출근, 5시 퇴근을 하는 특수한 경우라는 이유에서다. 


간호사의 인수인계는 하루 세 번, *데이번, **이브번, ***나이트번에게 “몇 월 며칠 데이(이브 혹은 나이트)번 인계 드리겠습니다.” 하며 인계가 시작된다. 각 병동에는 ‘****인계장’이 존재하는데 그 서식은 거의 정형화되어 있다.


인계장 예시

인계장에는 데이, 이브, 나이트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이름이 적혀있고, 입원환자, 퇴원환자를 적어 넣는 칸과 각 과의 환자 수를 종합한 전체 환자 수를 적게 되어있다.

병원마다, 심지어는 병동마다 다르겠지만 칸을 나눠서 어느 칸에는 검사를 제외한 오늘 마무리할 일들을 적고, 다음 칸에는 협진 내역을 적고, 다른 칸에는 피검사 리스트, 또 다른 칸에는 영상의학과 검사, 다른 곳에는 수술환자, 특수 검사, 외출 현황, 오늘 소독 환자, 거기에다 목욕시킬 환자까지 적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인계장을 파악하게 되면 오늘 병동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인계장 칸마다 어떤 부분이 쓰여 있는지를 제대로 알면 편하다.


인계장을 다 훑고 나면 환자의 객관적 자료를 살핀다. 바로 활력징후와 혈당, I/O(Input/Output)이다. 객관적 자료 중 열이 높았던 환자, 혈압이 높았던 환자, 당이 높거나 낮았던 환자, 처치가 들어갔던 환자들을 인계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면 스테이블(stable) 했노라고 말하고 넘어간다.

그러고 나면 본격적인 메인 인계가 들어간다. 인계를 할 때는 인계를 듣는 선생님 중 연차가 제일 높은 선생님의 듀티에 따라 그 선생님이 쉴 동안에 있었던 일과 그동안의 환자 상태를 브리핑하게 되는데 환자 개개인의 인계사항이 적힌 카덱스를 바탕으로 인계를 진행하게 된다. 요즘 병원들이 종이에서 컴퓨터 인계로 넘어가는 추세인데 그렇지 않은 병원도 많으니 알고 있어야 한다. 여러 병원을 전전해본 결과, 카덱스를 종이로 쓴다고 해서 좋지 않은 병원이고, 컴퓨터로 인계를 진행해서 좋은 병원이라고 할 수 없다. 현재 나는 종이 카덱스로 인계를 함에도 굉장히 만족스럽게 일하는 중이다.

인계의 본론으로 넘어가면 환자의 병실과, 이름, 진단명, 해당 과, 데이번에게 인계를 넘길 때는 입원일 수를 나열하면서 시작한다. 인계의 본론을 들으면서 다음의 항목들을 알아채는 대로 적어 넣으면 인계가 점점 귀에 쏙쏙 들어오게 될 것이다.


□ 진단명

□ 증상

□ 변경된 주사제나 먹는 약

□ 오늘 봐야 할 협진이나 검사

□ 달고 있는 것(소변줄, drainage bag 등)

□ 최근 검사결과 중 비정상인 값

□ 사용한 prn

□ 특수한 일


물론 의학 용어를 모른다면 진짜 아무것도 귀에 안 들어올 것이다. 선생님이 “이분은 ‘LC(Liver Cirrhosis, 간경화)’ 환자로….”라고 말씀하셨는데 LC가 뭔지 모르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 환자가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왜 어떤 처치가 들어가는지 모를 것이다. 그 부분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공부는 필수다. 적어도 인계가 귀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는 공부해야 한다. 차근차근 쌓아가다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심화로 넘어가서 신환(신규환자) 인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자신이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는데 인계를 듣는 와중 신규환자에 대한 인계를 듣게 된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한 사람의 A부터 Z까지를 파악할 수 있는 첫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간 마주한 환자들은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환자였을지라도 신규환자는 선배님들과 본인이 아는 정도가 똑같다. 마음으로 더 사랑해 주어도 좋다. 나는 특별한 나의 첫 환자를 일에 치여, 무지에 치여 넘겨버렸지만 이제 일을 시작하게 되는 선생님들은 특별함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환은 이름, 나이, 성별을 포함해 진단명, 증상, 증상과 관련하여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과거력은 무엇인지, 어떤 수술이나 시술을 받았었는지, 알레르기가 있는지, 틀니나 보청기 같은 보조 의료기를 가졌는지,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서는 코로나에 걸렸는지, 백신은 몇 차까지 맞았는지 등을 상세히 나열한다. 그리고 의사가 처방한 주사제, 검사 결과, 결과 보고 상황, 먹는 약, 식사 종류, 수술 일정 등이 브리핑된다. 사실 일반 환자에게서 파악해야 할 인계사항 자체는 비슷하다. 그렇지만 아예 처음부터 이 환자가 어떤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가 어땠고, 앞으로 입원 생활을 통해서 어떻게 병을 치료해 가는지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가히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오리엔테이션을 통해서 신규환자를 받을 때 물어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그 환자의 검사 결과나 의사가 회진을 통해 말한 추후 치료 방향 같은 것은 모르는 상태이니 그 부분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간호계가 아닌 다른 교대업무는 어떨지 모르겠다. 인계를 통해 업무를 전달하다 보면 빠뜨린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퇴근하고 나서야 그것을 떠올릴 때도 있다. 그러나 몇몇 간호사는 상급자가 빠뜨리고 간 것은 그냥 넘어가고 하급자가 빠뜨린 것은 빠짐없이 따지고 든다. 물론 중대한 실수에 대한 보고사항을 인계하지 않을 수는 없고, 당연히 해야겠지만 다음 듀티번 선생님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조차 짚고 넘어가는 상황이 종종 있다.

물론 챠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빠뜨리는 부분은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알려줄 수 있지만 감정을 함께 토해내며 심각하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일이 겹치고 바쁜데 전 듀티의 일까지 해야 하게 되면 짜증이 치솟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만약 하급자에게 욱하여 여러 말을 뱉게 되었다면 적어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오랜 시간 일해야 하는 동료이니 말이다. 실수하고 빠뜨린 것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동료를 품에 감싸 안아준다면 참 좋겠다. 



*D, day: 낮 근무, 오전 근무.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 전체 근무시간은 보통 8시간 정도이다. 의사의 회진, 협진, 증상 조절, 물리치료, 검사 등 진료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히 해내는 시간이다.

**E, evening: 저녁 근무, 오후 근무. 근무시간은 데이 근무와 비슷한 8시간가량을 일한다. 진료가 끝나기 전까지 업무를 최대한 마무리하는 역할이다.

***N, night: 밤 근무. 병원마다 근무 시작 시간은 다르지만 보통 12시간 정도 일한다. 낮에 병동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이다.

****인계장: 인수인계를 위한 전반적인 내용을 기록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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