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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로운 Dec 17. 2020

네가 영원히 불행했으면 좋겠어

넷플릭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2016> 

  '나를 떠난 당신이 영영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행하고 또 불행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나에게 저지른 그 죄를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를 아무도 없는 곳에 버려둔 채, 나의 사랑, 우리가 함께한 시간, 우리 아기까지 죽이고 떠난 당신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그때의 나는 오늘로서 죽었으며, 당신은 오늘부터 영원히 불행했으면 좋겠다. 아니, 불행할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포토

에드워드는 그녀를 '야행성 동물'이라 불렀다. 불면증 때문이거나, 잠들지 못하고 뭔가를 하는 그녀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연락도 없던 에드워드에게서 편지와 함께 '수전을 위해(For Susan)'이라 적힌 책이 도착했다. 그가 직접 썼다며,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썼다는 이 책의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 ' '야행성 동물'이다. 




다 낡은 트레일러 옆 붉은빛 소파 위, 딸과 아내가 강간당한 채 나체로 죽어있었다. 토니는 넋을 잃었다. 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무뢰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손쓸 새도 없이 사랑하는 딸과 아내가 납치당했다. 정작 본인은 인적 없는 황무지에 홀로 버려졌다. 한밤 중 전화도 터지지 않는 길에서 황당하게 벌어진 일이었다. 피할 수도 없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수전은 가쁜 숨을 내쉬며 책을 내려놓았다. 가슴에 텅! 하고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었다.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남편, 에드워드와의 기억. 잊으려고 그렇게 애썼던 그녀의 행적이.



www.themoviedb.org

수전은 성공한 아트 디렉터였다. 부와 명예, 능력 있고 잘생긴 남편, 호화로운 집,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그녀. 다들 그녀의 이번 전시를 성공적이라 평가했다. 반짝이는 배경 속에서 퍼레이드 모자를 쓴 비만 여성들이 경망스럽게 나체의 몸뚱이를 흔들어댔다. 거대하게 분할된 화면 위로 흘러내리는 살이 출렁거렸다. 멋지게 차려입은 전시회의 사람들은 경이롭다는 듯 그 '작품'들을 감상했다. 이게 정말 예술인가, 또는 관음인가? 인파 속에 허영과 가식이 새어 나왔다. 이 '작품'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화려하고 비대한 그 '작품'들과 달리 검은 드레스를 입은 수전의 몸은 말라있다.


철문과 차갑고 딱딱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집에 그녀는 혼자 있었다. 남편은 전시에도 오지 않았고, 곧바로 일이 있다며 뉴욕으로 떠나버렸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녀는 사실 텅 비어있었다. 전시회의 화려한 작품처럼 거대한 그 집도 텅 비어있었다. 고독하고, 쓸쓸하고, 외로웠다. '쓰레기야' 수전은 본인의 전시를 그렇게 평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예술에 알맹이가 없다는 것, 즉, 진정성이 없다는 것. 자아가 부재한 것. 다른 말로 진짜 예술이 어떤 것인지 그녀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에드워드는 늘 본인에 대한 글을 써서 수전에게 보여줬다. 학교도 그만두고 글을 썼다. 그는 이상적이었다. 수전도 그랬다. 그런 그를 사랑했던 때가 있었는데. 결혼 후 그런 에드워드가 수전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실이 자꾸 거슬렸다. 수전은 그새 지금의 남편, 허튼을 만나 바람을 피웠다. 어느 날 밤, 수전은 차 안에서 허튼에게 안겨 울고 있었다. 병원 앞이었다. 낙태를 했다. 에드워드와의 사이에 생긴 아기였다. 그가 모르면 그만이라 생각했는데, 에드워드가 그들 앞에 서있었다. 


www.themoviedb.org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예술로 이름을 날리는 수전은 작품을 읽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 사실을 에드워드는 알고 있었다. 그가 보낸 책은 그들의 과거 그 자체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자비하게 죽은 아내와 딸은 그가 사랑하는, 본인을 사랑했던 수전, 그리고 말도 없이 지워버린 아기였다. 난데없이 밤에 나타난 무뢰배들은 '야행성 동물'이자, 그의 사랑을, 아기를 죽이고 떠난 수전이었다. 토니는 절망에 빠진 과거 에드워드 그 자체이며, 그를 도운 형사 바비는 절망에서 일으켜 복수를 돕는 현재의 에드워드였다. 그는 글을 썼다. 그 글을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수전은 불안해졌다. 텅! 계속해서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가빠졌다. 그때의 서슬 퍼런 죄책감이 더욱더 선명해졌다. 


'그는 약해. 결혼, 후회하게 될 거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솔직한 에드워드를 보고 수전의 엄마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 가장 무섭고 잔인한 방법으로, 말보다 더 강한 방법으로 그녀를 옥죄었다. 진심은 공(空) 보다 강하다. 토니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가도록 설계된 소설 속에서, 수전이 토니, 아니 에드워드가 되어 그녀가 직접 그에게 저질렀던 폭력을 체험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본인의 죄를 절대 잊지 못하도록, 평생 그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도록.



이 책을 전달한 에드워드의 메시지는 마지막에서야 명확해진다. 철저한 복수극이다. 소름 끼치도록 불안한 복수극이자 저주. 미러링을 통해 처절한 그의 심정을 투영하며, 상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 끔찍한 경험을 부어 넣는다.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 고통 속에서 본인의 선택을 끝없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크기만 거대한 텅 빈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사랑을 했던 그때 그 시절을 연신 돌이키며, 영영 고독한 그 상태로. 






출처: 다음 영화 포토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2016>

(Nocturnal Animals, 2016)

감독: 톰 포드

출연진: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 마이클 섀넌, 아론 테일러 존슨, 아미 해머

장르: 드라마, 스릴러

상영시간: 1시간 56분

감상가능한 곳: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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