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대기 중입니다 - 3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어려웠을 뿐. 결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반대하는 부모님을 향해 내 의사를 내던지는 내내 나는 알고 있었다. 이 험난한 산을 넘어가는 과정에 꼼수나 돌아가는 방법은 없고, 오로지 대쪽 같은 직진뿐인 것을. 돌려서 포장할 수도, 거짓을 꾸며낼 수도 없으니 솔직한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직접적으로 정확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 과정이 어찌나 아프고 힘들던지, 숨고 숨는 과정에서 대화는 어긋나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오래된 상처들까지 다 들고일어나 버렸다.
"지금 통보하는 거냐?"
결혼 의사를 밝혔을 때 엄마에게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의사결정을 부모님의 의견을 기준으로 변경할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통보가 맞았다. 그렇다고 했다. 엄마는 뒤집어졌다. 이런 비슷한 말로 두세 번 정도의 집안 뒤집어엎는 소동이 일어났다. 울고불고 난리가 나는 소동들. 내가 더 사근사근한 딸이었다면, 또는 입에서 청산유수 같은 말이 나오는 사람이었다면, 이 과정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늘 말도 잘 못하고 눈물부터 보여버렸다.
그렇게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러 사건들이 지나면서 부모님은 그 말을 아예 꺼내지 않았고, 나는 언제쯤 다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눈치를 보며 기다릴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말을 꺼낼까 하면 풍기는 그 부정적인 분위기에 나는 위축되었다. 본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펑 터지고는 했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설득을 한다는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것이.
1. 나는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사회생활 하는 30대이자, 돈도 열심히 벌고 살고 있지만 그건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아직도 나를 열다섯 살 사춘기 중학생으로 보고, 나는 부모님의 안락함을 버리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가 길어지고, 혼내거나 화를 내면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부모님에게 지금의 내 모습이 어찌나 기가 막힐까.
2.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을 덜어내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다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아프지만 내 안에 잘 닫아둔 묵은 상처와 감정들까지 털어내야 했다. 그래야 아프게 쑤시는 말들을 멈출 수 있었다. 딸한테 이 정도도 말을 못 하냐며 감정을 쏟아내는 엄마에게 나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만해 달라 말했다. 어쩌다 보니 어릴 적부터 엄마가 했던 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현되어 나는 그것까지 들어내 엄마에게 던졌다. 사실 마음속에 안고 있는 더 심한 것은 던지지 못했다. 그저 내가 죄책감을 갖게 하는 말을 그만해 달라는 것이 요였다.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구나, 화가 났구나, 어릴 적부터 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착한 딸로 살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힘들었던 그 순간들이 나 때문이 아니었음을, 그 당시의 나에겐 말을 하지 않은 다른 문제들이 얽혀있었음을 나는 이제 와서야 알았다. 갑자기 그동안 나 때문인가?라고 생각했던 어린 마음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도 되는데. 나는 왜 성장기간 내내 그런 마음을 안고 살았을까? 그 마음에서 벗어나야겠다, 나는 이제야 생각했다.
그 트라우마까지 결국 나는 다 꺼내놓았다. 그러니 그런 말들을 멈춰달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나쁜 딸인지, 다시 생각해 달라 했다. 묵혀둔 말들을 꺼냈다. 그리고 내 계획에는 변화가 없음을 전달했다. 또 한 번 집안이 뒤집어졌다. 아 어쩌면 이 과정 끝에 내가 원하는 미래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모 드라마에서나 보듯이 부모자식 연 끊고 사는 결말일 수도 있겠구나. 반대로 말해 그냥 여기가 이 오랜 갈등의 끝이었다.
3. 돌파구는 하나다.
본가에서 돌아온 나는 며칠 동안 혼자 글을 썼다. 이 상황이 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글. 부모와 담쌓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가시를 다 일으켜 세워서 밤송이처럼 덤벼드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못할 짓이었다. 대쪽같이 내 의사를 전하돼 그만해 달라 할 정도로 성이 나있는 엄마의 마음에 미안함도 전해야 했다. 다만 말을 잘 못하겠으니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지우고 하는 동안 엄마 카톡이 먼저 왔다. 처음에는 나를 비난하는 글이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 나를 놓은 것 같은 말이 왔다. 나의 온전한 독립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그동안 써왔던 말을 다듬어 장문의 글을 보냈다.
엄마아빠의 기대에 미치치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힘들고 재미없는 인생 재미있게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을 만났어. 내 생각만 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등 돌리고 지내고 싶진 않아. 예전처럼 무엇이 행복한지, 즐거운지, 어떤 게 고민인지, 어떻게 이겨냈고 어떤 일들을 일상에서 만나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잘 지내고 싶어.
라는 내용의, 내가 이제까지 썼던 그 어떤 편지보다 더 진심만을 진액처럼 담은 소원 같은 글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전화가 왔다.
"너는 참, 글로는 잘 쓰는데 말은 그렇게 못 하니. 앞으로도 말하기 힘들면 글로 해줘."
마음을 열 테니, 이번 달에 한 번 그 친구와 만나자는 이야기.
10개월 동안 멈춰있던 강바닥에 맑은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건조하고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져버린 마음에 물이 흘렀다.
대화란 너무나도 어렵다.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사이일수록 더더욱. 오랜 감정으로 막혀버린 길을 터내기 위해선 그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 방법은 오로지 하나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대로, 너무나도 아프지만 명확한 해결책. 어디 교훈서에나 나오는 케케묵은 말처럼 들리는 그것.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