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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Jul 05. 2022

나는 12년 차 을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사로 산다는 것

 2011년 3월 1일. 


 직업인이 된 날이며, 중등 교사로 발령받은 날이다. 그때 내 나이 23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무려 16년을 학교에 있다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도 학교였다. 


 고등학교 3학년 말, 수능시험 성적 결과표를 보며 담임 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했을 때 담임 선생님은 교대나 사범대 진학을 권하셨고 그때 나는 확고하게 말했다.      

- 선생님, 저 진짜 선생님은 하기 싫어요!     

그렇게 말했던 과거의 나에게 민망하지만 여전히 12년째 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임용시험에 합격한 후 발령을 기다리며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선배들은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여러 조언들이 있었지만 특히 어린 내 마음에 와닿는 것은 3월에는 교실에서 웃지 않기.     


 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요지는 3월에 지나치게 친절과 상냥 모드로 지내고 아이들의 요구사항들을 모두 허용하다 보면 교실은 무질서 현장이 되어버리고, 오히려 규칙을 잘 준수하거나 열심히 학습하려는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며 일 년 동안의 수업이 계속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초임 교사인 나는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매우 동감을 하고 '3월 룰'을 철저하게 잘 지켰던 것 같다. 특히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이 강했던 것 같다. 23살의 나는 매일 오피스룩만 입었으며 경직된 표정으로 수업에 관련한 규칙들을 안내해주고는 단호하게 지키기 위해 애썼다. 어린 나이에도 나름 학생들을 잘 이끌어간다는 주변 선생님들의 평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가지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던가. 어느덧 교사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그동안 사회 분위기나 나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경력이 20, 30년 되시는 선배님들이 들으면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3월에 경직된 표정으로 교실을 들어가지 않는다. 친절한 첫인사말을 전하며 수업 규칙들을 풀어낸다. 조금은 소란스러워도 다양한 아이들의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존중하고 귀 기울여 본다. 현재 나의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숙제를 지속적으로 안 해오는 학생은 빡지(같은 구절을 여러 번 옮겨 써야 하는 일종의 벌)를 시키기도 했고, 지나친 잡담과 장난으로 수업 시간을 방해하는 학생은 교실 뒤편에 서있게 하기도 했다(타임아웃 기법으로 교육학에도 나오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요즘은 이러한 방법이 학습권 침해 또는 신체의 자유 침해로 규정되기도 한다.). 제법 큰 소리로 지도하는 일도 잦았던 것 같다.

     

 어느 전문가는 아이들은 열 번, 스무 번 말해줘도 모른다면 다시 천 번을 더 얘기해줘야 한다고 했다. 요즘 들어 나는 그 말을 아주 실감한다. 교육이란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도록 가르치며, 잘못된 행동은 수정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활동이다.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더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또다시 일러준다. 


 한 번씩 안타까운 것은 아무래도 학교가 많은 학생들이 같이 생활하는 공간이니만큼, 특정 학생의 쉽게 고쳐지지 않는 문제 행동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끼치더라도 학교에서 이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특정 학생의 문제행동이 이어질 경우 학교에서는 상벌점제에 의거하여 벌점을 주거나 각종 위원회(선도위원회, 학교폭력자치위원회, 교권보호위원회 등)를 열어 교내봉사, 사회봉사 등 각종 봉사활동이나 교육을 이수하도록 대처한다.      

 사실 어떤 날에는 이마저도 아주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벌점이 쌓인 학생들은 기준 벌점이 초과하기 전에 선생님들에게 찾아와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묻기도 하고 쓰레기를 줍거나 여러 선행을 계획적으로 하고 상점을 받아 상쇄시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학생들이 찾아오면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기회를 주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소소한 청소를 시키고 상점을 후하게 부여하기도 한다. 나아가 징계가 내려져 봉사활동을 이수하게 되더라도 며칠 청소하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일관하는 학생들도 제법 많이 보아왔다.  


 교사로서 나는 딜레마에 빠진다.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를 바른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이나 면학분위기가 잘 조성된 공간에서 학습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그러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 모두 나의 몫이고 나의 역량인데 어느 한쪽의 정서를 이해하면 다른 한쪽이 피해본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서 균형을 잡기 어려워진다.      

 

 허용적으로 학급을 이끌어가다 보면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교실이 시끄럽다 등의 민원이 있기도 하고 단호하고 조금은 까다롭게 학급을 운영하다 보면 선생님이 너무 엄격하고 무서워서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등의 민원이 있기도 하다. 심지어 지역의 엄마들이 많이 가입한 커뮤니티 카페에도 어떤 학교의 어떤 학년 선생님, 어떤 과목 선생님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등의 글들이 올라온다. 마치 연예인들이 자신에 대한 악플을 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나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고민이 이어진다. 


 나는 현재 대한민국의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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