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81
병원 정기 검진 때문에 어머니 모시고 오는 날.
아들하고 딸하고 챙겨주시겠다고 항상 보따리에 뭔가를 바리바리 싸 두신다.
"웜매. 뭣을 또 이라고 많이 싸셨소?"
"뭣이 많어야? 줄 것이 을마 읎어가꼬 그란디야."
"뭣이 읎어라. 겁나게 많구만."
"장흥 이모가 와가꼬 파래무침을 해줬는디야. 그라고 맛있어브냐. 느그가 먹을랑가는 모르것는디 갖고 왔다야."
"그랍디여? 그라고 맛있읍디여? 그라믄 가져가서 잘 먹으께라."
스물몇 살 때는 어머니가 시골에서 뭔가 챙겨주시는 걸 가져오는 것이 썩 그랬다.
자취방 냉장고가 비어있어도, 그걸 들고 오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버스타고 오는 길에 들고 오는 것이 창피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것이라면 흙묻은 양파도, 끝이 시든 대파도, 오래된 반찬통에 눌러담아 딱딱해진 멸치볶음도 그냥 다 좋다고 받아오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거 챙겨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참 늦게야 알았다는 자책과 함께 말이다.
"지형이는 바쁘냐?"
"글 쓰고 그라느라고 맨날 그라제라."
"잉. 그랑께 그럴 것이다. 그것이 힘들제. 보통 그란 일이 아닌디. 쉬어감서 하라그래라잉?"
"운동도 하고 그랍디다. 걱정하지 마시쇼."
"으짜것이냐. 니가 잘해주고. 으짜든지 도와주고 해야한다잉? 싸우지 말고, 서로 으짜든지 이해해주고. 말 한마디를 해도 부드럽게 해주고잉? 느그 아부지는 평생 가도 뚝방망이같이..."
"으째 갑자기 아부지 흉을 보시고 그라씨요?"
"오호호호이힝. 내가 그래븠냐?"
잠시 대화가 멈춘 사이,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는 고로롱 코 고는 소리를 내며 금세 잠드셨다.
여동생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가 싸오신 보따리를 폈다.
동그란 플라스틱 젓갈통 세 개에 짙은 파래가 야무지게 담겨있다. 큰아들, 작은아들, 막내딸 하나씩인 거다.
내일 아침에 드시겠다며 얼린 떡이며, 여동생 주겠다고 싸온 마른반찬이며 여러 가지다.
"피곤할 것인디 얼른 가서 쉬어라."
"그라께라."
지형씨와 내 몫으로 챙겨주신 몇 가지를 싸들고 동생집에서 나왔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그냥 어머니가 앞으로도 계속 두 달에 한 번씩 계속 피곤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피곤한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