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무엇으로 사는가?

돌도끼에서 AI까지...

by 송영광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직 인간이 지혜의 첫 계단을 오르기 시작할 무렵, ‘우려(憂慮)’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까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곤 했다.


어느 날, 마을의 젊은이가 숲에서 날카로운 돌을 나뭇가지에 묶어 들고 왔다. 젊은이는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어르신, 보십시오! 이것은 ‘돌도끼’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곰 가죽을 벗기느라 손톱이 깨질 일도, 나무를 꺾느라 손목이 부러질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지팡이를 바닥에 쾅 내리찍으며 호통을 쳤다.
“어리석은 놈! 네놈은 신께서 주신 가장 거룩한 도구인 ‘맨손’을 모욕하고 있다. 그 돌덩이에 의지하다 보면, 너의 주먹은 물렁해질 것이고 손아귀의 힘은 사라질 것이다. 결국 인간은 껍데기만 남아 짐승보다 약한 존재가 될 게야!”


하지만 젊은이들은 돌도끼를 썼고, 그들의 주먹은 약해지는 대신, 그 손으로 집을 짓고 밭을 일구었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수천 년이 지났다. ‘우려’ 노인의 후손이 다시 마을의 장로가 되었다. 어느 날, 한 학자가 갈대 줄기를 으깨어 만든 종이와 숯으로 만든 펜을 들고 왔다.
“장로님, 이것을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머릿속에 모든 것을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빚진 곡식의 양도, 조상들의 이야기도 여기에 적어두면 영원히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로는 혀를 차며 학자의 종이를 빼앗아 찢어버리려 했다.
“불경한 짓이다! 인간의 영혼은 기억 속에 머무는 법. 저 종이 조각에 의지하면, 너희의 머리는 게을러지고 기억력은 감퇴할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이름조차 종이를 봐야만 아는 멍청이가 될 게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소한 것을 잊는 대신, 더 많은 지식을 쌓아 올렸다. 기억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사(歷史)가 되었다. 장로는 한탄하며 눈을 감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활자(活字)가 발명되고 책이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다. ‘우려’ 노인의 또 다른 후손이 광장에 섰다. 사람들은 이제 모여서 웅변을 듣기보다, 각자 방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장로는 탄식하며 외쳤다.
“보라!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의 눈을 보고 말하지 않는다. 차가운 활자에 매몰되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말하기’와 ‘웅변’이 죽어가고 있다. 이제 곧 사람들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책 속에 숨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지혜는 더 멀리, 더 넓게 퍼져나갔다. 말하는 능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사유(思惟)가 되어 침묵 속에서 무르익었다. 이번에도 장로의 예언은 빗나갔다.


그리고 오늘날, ‘우려’ 노인의 마지막 후손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손자를 보았다. 손자는 인공지능(AI)에게 질문을 던지고, 순식간에 답을 얻어내고 있었다.
노인은 공포에 질려 손자의 손목을 잡았다.
“멈춰라! 이건 악마의 유혹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고통만이 인간을 성장시킨다. 저 기계가 대신 생각해주면, 너의 뇌는 굳어버릴 것이고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때, 빛나는 옷을 입은 천사가 노인의 곁에 내려와 조용히 물었다.


“그대의 조상은 도끼가 주먹을 없앨 것이라 했으나, 인간은 손으로 문명을 지었다.
그대의 아비는 종이가 기억을 없앨 것이라 했으나, 인간은 기록으로 영원을 얻었다.
그대는 이제 AI가 생각을 없앨 것이라 하는가?”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하지만… 고뇌 없이 얻은 결과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연산하는 능력을 잃은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천사는 미소를 지으며, AI가 띄워놓은 화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창밖의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라. 도끼는 나무를 자르는 고된 노동을 대신하여, 인간이 어떤 집을 지을지 상상하게 했다.
종이는 머릿속에 담아두는 수고를 대신하여, 인간이 어떤 역사를 남길지 고민하게 했다.
이 기계 또한 답을 도출하는 생각의 짐을 덜어주어, 인간이 그 토대 위에서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를 꿈꾸게 할 것이다.”


천사는 노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도구는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지만, 결코 인간의 ‘영혼’을 대체할 수는 없다.
진짜 바보는 도구를 쓰는 자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힘이 고작 도구 하나 때문에 사라질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자야말로 진정한 바보다."


노인은 그제야 자신이 수만 년 동안 똑같은 걱정을 반복해왔음을 깨달았다. 인간의 위대함은 무거운 돌을 드는 팔힘이나, 많은 것을 외우는 기억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서, 없던 것을 있게 만드는 ‘창조’에 있었음을 그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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