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종소리

챕터6. 기계의 종소리

by 송영광

1844년, 영국 맨체스터. 새벽 5시 반,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거리에 종소리가 울렸다. 공장의 종이었다. 그 소리에 맞춰 수천 명의 노동자가 집을 나섰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당시 영국 면직공장의 고용 연령은 여덟 살이었다. 탄광은 더 어려서 네 살부터 일했다. 열 살 미만의 아이들도 하루 15시간을 일했다. 종소리가 울리면 움직이고, 종소리가 울리면 멈추는 것.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리듬이었다. 기계는 인간보다 먼저 돌아가기 시작했고, 인간은 뒤늦게 규칙을 만들어 쫓아갔다. 이 순서는 이후 200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기계의 시간 지배는 공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루이스 멈포드는 1934년 저서 『기술과 문명(Technics and Civilization)』에서 그 뿌리를 수도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바치기 위해 하루를 정밀하게 쪼갰다. 새벽 기도(Matins), 아침 기도(Lauds), 낮 기도(Sext)… 하루를 여섯 번으로 나눈 성무일과(Canonical Hours). 이 경건한 루틴이 정확한 시각을 알려주는 기계 장치를 요구했다. 멈포드의 표현을 빌리면, 수도원은 "규칙적인 삶의 본거지"였고, 시계는 "이 삶의 거의 불가피한 산물"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수도원 담장 안에서 기도를 위해 길들여진 시간의 규율이, 담장 밖으로 나가자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상인은 시계로 거래 시간을 정했고, 길드는 시계로 노동 시간을 관리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경건한 루틴이, 의도하지 않게 산업 노동의 문화적 기초가 된 것이다. 기도를 위한 도구가 노동의 도구가 되기까지, 300년이 걸렸다. 그리고 공장의 종소리는 그 긴 준비의 마지막 단계에 불과했다.


역사학자 E.P. 톰슨은 이 시간 지배의 최종 단계를 연구하며 '시간 규율(time-discipline)'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산업혁명 이전, 인간의 시간은 자연의 리듬을 따랐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비가 오면 쉬고, 일이 끝나면 집에 갔다. 시간은 '과업 중심'이었다. 밭을 갈면 끝이고, 빵을 구우면 끝이었다. 시계가 아니라 일의 완료가 퇴근 시간을 결정했다.


기계가 그것을 바꿨다. 증기기관은 해가 뜨든 지든 돌아갔다. 기계는 쉬지 않으므로 사람도 쉬어서는 안 됐다. 공장주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는 기계의 효율이 아니라 인간의 불복종이었다. 자연의 리듬에 길들여진 어른들은 정시 출근을 견디지 못했다. 월요일마다 결근하는 노동자, 점심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인부. 공장주들은 벌금을 매기고, 감시인을 세웠다. 더 교활한 방법도 썼다. 톰슨이 발굴한 기록에 따르면, 일부 공장주는 아침에 시계를 앞당기고 저녁에 시계를 되돌렸다. 시계가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속임수와 착취의 외투"로 사용된 것이다. 그래도 잘 안 됐다. 어른의 몸에 새겨진 리듬은 벌금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아이들은 쌌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의 뇌는 아직 자연의 리듬에 굳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규칙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기계의 리듬을 내재화한 최초의 인류였다. '머신 네이티브'로 길러진 것이다.


그리고 학교가 등장했다. 1763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일반지방학교규정(Generallandschulreglement)을 공포했다. 세계 최초의 의무교육법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 뒤처진 프로이센이 따라잡기 위해 선택한 도구가 공교육이었다.


만 5세부터 13세까지 의무 출석. 읽기, 쓰기, 기독교 교리, 그리고 정부가 정한 교과서.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부모에게 무거운 벌금을 물렸다. 교실은 공장의 축소판이었다. 종이 울리면 앉고, 종이 울리면 이동하고, 종이 울리면 돌아갔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귀여운 동요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출근 훈련 프로그램의 주제가다. 교복은 유니폼이었고, 시간표는 시프트(shift)표였으며, 성적표는 생산성 평가서였다. 다만 공장은 월급을 줬고, 학교는 숙제를 줬다. 아이들 입장에서 어느 쪽이 나았는지는 묻지 말자.


기계는 시간을 바꿨다. 그것이 첫 번째 전환이다.


해가 뜨고 지는 리듬에서 시계가 지배하는 리듬으로. 인간의 몸이 기계의 속도에 맞춰야 했다. 이 적응에 실패한 세대는 도태되었고, 성공한 세대가 산업사회의 중산층이 되었다. 학교는 그 적응을 훈련시키는 기관이었고, 대학은 그 적응의 최종 인증서를 발급하는 곳이었다. 이 시스템은 200년간 놀라울 정도로 잘 작동했다. 너무 잘 작동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2024년의 한국 초등학교를 보라. 8시 40분에 종이 울리면 교실에 앉고, 40분 단위로 과목이 바뀌고, 12시 10분에 점심 종이 울린다. 1763년 프로이센의 시간표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260년 전 시스템의 운영체제가 아직도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쥔 아이들이 18세기식 시간표로 살고 있다. 버그가 아니다. 이 시스템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두 번째 전환은 컴퓨터와 함께 왔다. 기계가 시간을 바꿨다면, 컴퓨터는 공간을 바꿨다. 정확히 말하면, 정보가 존재하는 방식을 바꿨다.


기계 시대의 사무실을 떠올려보자. 서류 캐비닛이 벽을 따라 쭉 늘어서 있다. 파일은 알파벳순으로,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무언가를 찾으려면 첫 서랍부터 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선형적(linear)이었다. 순서가 있었고, 그 순서를 지키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었다. 보고서를 쓸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한 장씩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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