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배우는가?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5. 대학이라는 질문

by 송영광

논리적 결론은 명확하다. 1950년대 이전까지 대학의 가치는 배움 그 자체에 있었다. 교양을 쌓고, 세상을 이해하고, 더 깊이 사유하는 것. 그러나 지식사회로 전환된 이후, 대학의 가치는 경제적 지위의 획득에 묶였다.중산층이 되기 위한 수단. 사람들은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산층이 되기 위해 대학에 갔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대학에 가도 중산층이 되지 못한다면,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지위를 다른 경로로 얻을 수 있게 된 순간, 대학의 의미는 흔들린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1950년대 GM 임원이 대학 졸업 사실을 숨긴 이유는, 대학이 비즈니스와 무관한 교양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70년 뒤, 우리는 정반대 방향에서 같은 질문에 도착하고 있다. 대학이 다시 실무 능력과 무관해지고 있다. 다만 이유가 다르다. 그때는 지식이 필요 없는 시대여서였고, 지금은 대학의 지식을 AI가 대체하는 시대여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은 맞춘다.


오해하지 마세요. 대학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배움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AI 시대에 배움은 더 중요해진다. 다만 배움의 장소와 방식이 바뀐다. 4년간 강의실에 앉아 지식을 머리에 넣는 방식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만들고 부딪히며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익히는 방식으로. 대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형식에 갇혀 있던 "배움"이 탈출하는 것이다.


서울대 정문 앞의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아마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래도 일단 좋은 대학은 보내야죠." 그 마음 모르는 게 아니에요. 안전한 길을 원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하니까요. 문제는, 그 길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고속도로가 끊겨 있고,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직진을 안내하고 있다.


대전의 이준혁은 대학을 떠난 뒤 처음 6개월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부모님의 실망도 무거웠지만, 가장 힘든 건 "이게 맞는 건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명함에 적을 소속이 사라진 느낌. 동기들이 캠퍼스에서 축제를 즐길 때, 자기는 원룸에서 코드를 짜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AI 도구를 활용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폭발적으로 넓어진 것이다. 예전 같으면 팀 열 명이 6개월 걸릴 작업을 세 명이 두 달 만에 끝냈다. "대학에서 4년 배운 것보다 자퇴 후 6개월에 배운 게 더 많아요." 그의 말이다.


물론 이준혁의 사례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청년이 자퇴하고 스타트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대학이라는 하나의 정답이 있던 시대에서, 여러 개의 경로가 공존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을 가속하는 엔진이 AI라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미 경고했다. 산업사회의 특징은 생산과 소비의 분리인데, 교육 역시 학교라는 장소에서 교사에 의해 '생산'되고 학생에 의해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고. 대학은 이 산업사회형 교육의 정점이다. 대량생산된 지식을 대량의 학생에게 전달하는 시스템. 토플러는 덧붙였다.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 대학은 한 번 배우는 곳이다. 그러나 시대는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윈도우 98로 ChatGPT를 돌리려는 셈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옵시다. 대학이 흔들리면 무엇이 남습니까?


남는 것은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 대학이 제공했던 것 — 지식, 네트워크, 자격 — 이 세 가지가 모두 대학 바깥에서 가능해질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순수한 질문이다. 왜 배우는가.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도구의 역사를 봐야 한다. 증기기관이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컴퓨터가 인간의 계산을 대체했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늘 같은 곳에 있었다. 도구가 바뀔 때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해왔다. 그 이야기는 기계의 종소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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