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대학이라는 질문
주변을 둘러보면 증거는 차고 넘친다. 명문대를 나온 아들이 취업 준비 3년째다. 딸은 대학원까지 갔는데 계약직을 전전한다. 커피숍 알바를 하는 석사가 뉴스가 아니라 일상이 된 나라다. 부모들은 이 풍경을 보면서도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고 말한다. 다른 주문을 모르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한국 청년 체감실업률은 20%를 넘나든다. 대졸자의 첫 직장 평균 연봉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 등록금 대출을 갚는 데 평균 10년이 걸린다. 4년간 수천만 원을 투자해서 받는 졸업장의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접어들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ROI가 무너졌다. 일상의 언어로 말하면, "대학 나와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더 이상 낙오자의 변명이 아니라 통계적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현상이 더 극적이다. 학자금 대출 총액이 1조 8천억 달러를 넘었다. 한화로 2,400조 원. 미국 국가 부채의 상당 부분이 대학 등록금에서 나온다. 구글, 애플, IBM은 이미 채용 조건에서 대학 졸업장을 삭제했다. 일론 머스크는 "대학은 기본적으로 놀이와 증명을 위한 곳이지, 배움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서론에 불과하다. 진짜 지각변동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질문을 던져봅시다. 앞으로 10~15년 내에 AGI가 온다면, 지식과 그 지식의 조직화를 AI가 한다면, 중산층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의 무게를 느끼려면, 대학이 왜 중요해졌는지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1950년대 이후 대학이 팽창한 이유는 딱 하나다. 사회가 지식 기반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대신 사무실에서 정보를 조직화하는 일이 중산층의 일이 되었고, 그 능력을 키워주는 곳이 대학이었다. 대학의 핵심 기능은 지식의 전달과 조직화였다.
그런데 AI가 바로 그 일을 한다. 지식을 저장하고, 분류하고, 조직화하고, 심지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대학이 70년간 독점해온 핵심 기능을 AI가 거의 무료로, 24시간, 개인 맞춤형으로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샘 알트만이 팟캐스트에서 한 말이 화제가 되었다. "내 아이는 대학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OpenAI의 CEO가 한 말이다. 그는 덧붙였다. "이미 있는 프로젝트에 헌신하거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면 굳이 대학이 필요하지 않다." 과격한 발언 같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대학이 제공하던 세 가지 — 지식, 네트워크, 자격 증명 — 를 이제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AI가 준다. 네트워크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프로젝트가 만든다. 자격 증명은? 포트폴리오가 졸업장보다 강력해지는 시대가 이미 왔다. 대전의 이준혁이 투자자를 만날 때 그의 대학 중퇴 사실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서비스의 월 매출 그래프가 모든 자격을 대신했다.
올린 공대의 리처드 밀러 총장은 일찌감치 이 변화를 감지한 사람이다. 그는 2003년 매사추세츠에 파격적인 대학을 세웠다. 학과가 없다. 테뉴어가 없다. 대신 학생들은 첫 학기부터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진정한 배움은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 기초한 교육이 균형 있게 어우러졌을 때 가능하다. " 대학의 총장이 대학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이 지금까지 해온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대중적 대학은 역사의 기본값이 아니라 예외다. 소크라테스는 대학이 없었다. 아테네의 광장에서 질문하고 대화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중세 유럽의 대학은 성직자와 귀족의 공간이었다. 볼로냐 대학, 옥스퍼드, 파리 대학 — 이곳에 가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도 안 됐다. 500년간 대학은 소수를 위한 곳이었고,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대학이 모두를 위한 곳이 된 건 겨우 80년의 일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실은 역사의 한순간일 뿐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