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대학을 갔나?

5. 대학이라는 질문

by 송영광

2024년 봄, 서울대학교 정문 앞. 벚꽃이 흩날리는 관악캠퍼스 입구에서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교복 위에 걸친 패딩, 손에 쥔 합격 기원 엿. 어머니 한 분이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여기까지만 오면 된다. " 아이는 웃었지만 눈이 웃지 않았다. 그 옆을 지나가던 서울대 재학생 하나가 친구에게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 여기 와보면 생각 바뀔 텐데. "


같은 시각, 대전의 한 원룸. 스물두 살 이준혁(가명)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코드 에디터가 열려 있고, 옆 모니터에는 디스코드 채팅창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갔다가 나왔다. 컴퓨터공학과 2학년 때 자퇴서를 냈다. 부모님은 한 달을 울었다. 지금 그는 세 명의 팀원과 함께 AI 기반 교육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월 매출 이천만 원. 투자 제의가 두 건 들어와 있다. 서울대 정문 앞 그 고등학생이 도착하고 싶어 하는 곳에서, 이준혁은 이미 떠나왔다.


두 장면 사이의 거리는 150킬로미터가 아니다. 시대 하나만큼 떨어져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교육기관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다.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좋은 삶을 산다. 이 공식을 의심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의심하더라도 대안이 없으니 믿는 척이라도 한다. 종교를 잃은 시대에 대학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수능은 세례이고, 합격증은 구원의 증거다.


그런데 이 신앙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숫자부터 봅시다. 대학이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해졌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당연히 원래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대학이 대중의 것이 된 건 인류 역사에서 아주 최근의 일이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1950년대는 미국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글자와 숫자를 조직화하는 사람의 수가 공장에서 기계와 함께 일하는 사람의 수를 넘어섰다.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로. 근육에서 지식으로. 산업사회가 지식사회로 이동한 것이다.


195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중산층이라는 것은 포드나 제너럴 일렉트릭의 공장에서 무언가를 조립하고 생산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나와도 라인에 서서 일하면 집을 사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대학은 필요 없었다. 그래서 1950년대 GM의 임원들 중에는 대학 졸업 사실을 숨기고 다닌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까지 대학은 부유한 집안 자녀들이 교양을 쌓으러 가는 곳이었다. 법률가나 의사가 되려는 사람 외에는 실용적 이유가 없었다. 돈을 버는 사람이 왜 굳이 대학을 갑니까. 비즈니스하는 사람이 대학을 왜 나옵니까.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불과 70년 전의 상식이다.


그러나 사회가 지식사회로 전환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무실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지식을 조직화하는 일이 중산층의 일이 되었다. 그 능력을 키워주는 곳이 대학이었다. 1945년 200만 명이 채 안 되던 미국의 대학 등록자 수는 이후 60년간 10배로 뛰어 2010년에는 2,100만 명을 넘었다. 중산층 진입의 통행증. 대학은 다시 태어났다.


한국도 같은 궤적을 따랐다. 다만 속도가 더 빨랐고, 강도가 더 셌다. 한국전쟁 후 폐허에서 시작해, 1980년대 산업화, 1990년대 IMF, 2000년대 지식경제. 매 단계마다 "대학을 가야 살아남는다"는 신호가 강화되었다. 2010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5.4%에 도달했다. 네 명 중 세 명. OECD 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인 수치였다. 대학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다. 안 가는 것이 이상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2010년을 정점으로 그래프가 꺾이기 시작했다. 미국도, 한국도. 대학 진학률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답은 단순하다. 방정식이 깨졌다. 대학 졸업장이 중산층을 보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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