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교육과 입시의 불협화음
그런데 AI의 등장은 찰흙 빚기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가져왔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대신, 세상의 수많은 정보를 학습해서 가장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설계도를 보고 벽돌을 쌓는 건축가가 아니라, 멋진 집 사진을 수없이 본 뒤 "좋은 집을 지어줘"라는 말을 이해하고 찰흙으로 빚어내는 조각가다. 오랫동안 힘들게 지식이라는 벽돌을 쌓아야만 닿을 수 있었던 "만들기"의 영역이, AI의 도움으로 단숨에 도달 가능한 곳이 되었다.
할머니 앱을 만들고 싶었던 그 중학생이 지금 ChatGPT에게 말하면, 한 시간 안에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이 나온다. 몇 주를 끙끙대던 버튼 하나가 아니라, 전체 앱이.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딩을 1년 남짓 배운 학생 팀이 혼자 사시는 어르신 댁의 카메라로 위험한 행동을 감지해 보호자에게 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 다른 학생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경을 만들었다. 카메라가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을 읽어 "따뜻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어요"라고 속삭여주는 시스템. 과거라면 전문가 여러 명이 몇 달은 매달려야 했던 프로젝트를, 중고등학생이 몇 주 만에 해낸 것이다. 벽돌을 쌓을 줄 몰라서 포기했던 아이들이, 찰흙을 빚는 법을 배우자 집을 지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결과만 놓고 보면 아름답다. 과정에는 좌절이 있었다. 2021년, 우리의 교육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코딩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면 여전히 높은 수준의 기술 지식이 필요했다. 할머니 앱을 꿈꾸던 그 중학생처럼, 아이디어는 있어도 벽돌을 쌓는 기술이 부족하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아이에게 문을 열어주겠다는 꿈과, 소수만이 통과할 수 있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가 없었다. 둘째, 입시라는 바탕이 너무 강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해도,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아이들이 떠났다. 내신과 수능 앞에서 코딩 교육은 사치로 취급당했다. 살아남기 위해 입시 교육을 병행해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비판하던 바로 그 시스템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의 자존심이 의외로 잘 부서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입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AI는 또 하나의 위협이거나, 기껏해야 시험 준비를 도와줄 도구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천군만마였다. 7년간 실현하지 못했던 교육 철학을 비로소 현실로 만들어줄 도구. 높은 지식의 벽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아이들에게 다시 문을 열어줄 열쇠. 우리가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벽을 단숨에 허물어뜨리는 거인의 주먹이었다.
몇백 년에 걸쳐 일어날 지각 변동이 단 몇 년 만에 일어나고 있었다. 낡은 지도가 틀린 것은 지도의 잘못이 아니다. 땅이 바뀐 것이다.
창조적 변화를 위해서는 지식과 전문성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시스템 밖에 설 용기. 낡은 지도를 내려놓을 용기. 아이에게 "대학 가라"는 말 대신 "네가 풀고 싶은 문제를 찾아라"고 말할 용기. 그 용기는 개인에게만 요구할 수 없다.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구조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예언처럼 말했다. "19세기는 거대 기업의 시대, 20세기는 정부의 시대, 21세기는 공동체의 시대가 될 것이다." 거대 관료 조직이 기술 발전을 따라갈 수 없다면, 대안은 공동체에서 나와야 한다. 대기업이 할 수 없는 혁신을 스타트업이 하듯, 가볍고 의사 결정이 빠른 교육 공동체가 필요했다. 지도가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면, 나침반을 들어야 한다. 지도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라고 명령하지만, 나침반은 방향만 가리킬 뿐 길은 스스로 찾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