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교육과 입시의 불협화음
2014년, 우리는 한국의 교육을 바꾸고 싶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답을 빨리 맞히는 공부 대신,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교육. "소프트웨어 교육을 통한 창업가 경험." 지금 생각하면 겁 없고 야심 찬 목표였다. D.LAB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현장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에게 코딩이라는 도구를 가르쳐서, 머릿속 생각을 현실로 만들고 작은 사업까지 해보게 하자는 꿈이었다.
한 중학생이 찾아왔다.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넘어지셨을 때 가족에게 자동으로 알려주는 앱을 만들고 싶어요. " 착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는 높은 벽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기울어지는 것을 감지하는 센서의 원리, 그 신호가 "넘어짐"인지 판별하는 알고리즘, 가족에게 문자를 보내는 API 연동. 선생님은 아이의 아이디어를 기능별로 잘게 쪼개서 설명해야 했다. 아이의 머릿속에 있던 따뜻하고 단순한 목표가 센서, 알고리즘, API라는 차갑고 복잡한 용어들로 조각났다.
결국 아이는 앱의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화면에 버튼 하나를 만들고 "안녕하세요"라는 글자를 띄우는 데 몇 주를 끙끙댔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해지는 과정을 견디다가, 어느 날 교실에 오지 않았다. 그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산 입구에서 길을 잃거나 지쳐서 주저앉았다. 코딩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혼자 오르는 것과 같았다. 머리가 아주 좋거나 남다른 끈기를 가진 소수만이 정상에 닿는 세계였다. 교육이란 몇몇 영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에게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 믿었기에, 이 한계는 뼈아팠다.
같은 해인 2014년, 정부가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를 발표했다. 계획대로 2018년 중학교에서 34시간, 2019년 초등학교에서 17시간의 소프트웨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코딩이 국가 교육과정에 들어온 것이다. 방향은 맞았다. 세상이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디지털 문해력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속도였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공교육에 자리를 잡지도 못한 2022년, 코딩을 해주는 인공지능이 나타났다. ChatGPT. 코딩 교육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코딩을 대신해주는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마치 말을 타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승마 학교를 세웠는데, 문을 열기 전에 자동차가 발명된 것과 같았다. 안내 데스크에 직원이 앉기도 전에 손님이 먼저 도착한 셈이다.
앤드류 응은 2017년 1월, 스탠퍼드 대학 MSx Future Forum에서 이렇게 말했다. "AI는 새로운 전기입니다. " 100년 전 전기가 제조업, 운송, 통신, 농업을 바꿨듯이, AI가 모든 산업을 바꿀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이 비유를 교육에 대입하면 상황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전기가 깔리는 속도를 교육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선은 이미 교실 위를 지나가고 있는데, 교육부는 아직 촛불의 배치를 논하고 있는 격이었다. 전 세계 교육의 표준을 제시하는 OECD 교육분과가 정리한 그래프가 하나 있다.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두 개의 곡선. 하나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 다른 하나는 교육의 적응 속도. 기술이 교육보다 앞서가면 사회적 고통이 발생하고, 교육이 기술을 앞서가면 번영이 온다. 2016년 이후, 두 곡선 사이의 간격은 지수함수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 간격을 경제학자들은 "기술-교육 격차"라 부르고, 현장의 부모들은 "불안"이라 부른다.
그 간극이 만들어낸 유행어가 있었다. "문과라 죄송해요." 디지털 기술로 사무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문과생들의 일자리가 줄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막상 취업이 안 됐다. 대학 졸업장을 들고 코딩 부트캠프에 다시 등록하는 취준생이 늘었다. 6개월짜리 부트캠프 수강료가 600만 원에서 1,000만 원. 4년간 등록금을 내고도 다시 600만 원을 내야 취업이 되는 구조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의 필요조건도 아니고 충분조건도 아닌 시대. 이 아이러니 앞에서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더 비싼 학원을 보내는 것. 학교에서 배운 역량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 사이에 단층이 생겼다. 그 단층 위에 서 있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12년을 공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