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은 성도들

3. IT아빠모임

by 송영광

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낡은 지도를 들고 새로운 땅을 걷고 있는 거예요. 목적지가 바뀌었는데 지도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상태." 그 비유가 방 안의 공기를 바꿨다. 낡은 지도. 모두가 동시에 같은 것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건네준 그 지도.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안정된 인생. 그 지도가 가리키는 목적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방의 모든 사람이 느끼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원래 예정된 종료 시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10시. 10시 반. 11시. 한 번 열린 수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이 아버지들은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할 곳이 없었어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이야기하고, 집에서는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담을 한다. "아이 교육이 걱정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힐 수 있거든요.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허용된 감정의 폭은 좁다. 이 자리가 달랐던 것은 서른 명 모두가 같은 불안을 안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약함이 아니라 공유가 되는 자리. 그래서 말이 터진 것이다.


모임이 끝난 뒤에도 여러 아버지가 자리를 지키며 정리를 도왔다. 그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교회 부흥회가 끝난 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풍경. 무언가에 깊이 닿은 사람은 바로 일어서지 못한다. 이 아버지들에게 그날 저녁은 부흥회였다. 자기만의 고민이라 생각했던 것이 모두의 고민이었다는 발견. 혼자가 아니라는 확인. 그것만으로도 무언가가 달라졌다.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에 한 아버지가 옆을 걸으며 말했다. "형, 이런 거 또 해요. 다음에는 와이프도 데려올게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다른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저도요. 우리 와이프가 이 이야기 들으면 울 겁니다." 그들은 웃었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그날 밤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터져 나온 이야기들은 아버지만의 것이 아니었다. 밤 열한 시에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어머니들, 가계부 앞에서 한숨 쉬는 부부들, 아이의 "왜 공부해?"라는 질문 앞에서 함께 말문이 막히는 엄마와 아빠. 이것은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였고,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였다.


며칠 뒤 대치동에 사는 지인을 만났다. 아이 둘을 학원 세 군데에 보내고 있었지. 물었다. "이게 맞는 것 같아?" 그는 잠시 멈추더니 대답했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다른 대안이 없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가야지. "


타당성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결론은 더 열심히 하자. 의심이 노력으로 뒤집히는 논리. 그 문장 안에 한국 학부모 수백만 명의 심리가 담겨 있었다. "맞는지 모르겠다"는 의심과 "더 좋은 대학"이라는 집착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 이것은 개인의 불안이 아니다. 구조적 불안이다.


경제와 교육. 이 두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뇌관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한다. 2016년의 아버지들이 보여준 것은 두 뇌관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교육을 더 붙잡고, 교육에 더 투자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더 쪼들린다. 악순환이지. 그 악순환의 한가운데에 아이가 서 있다.


그날 저녁이 준 것은 답이 아니었다. 공감이었다. 서른 명의 아버지가 각자의 불안을 꺼내놓았고 불안은 공유되었지만 해소되지는 않았다. 해소될 수 없었지. 개인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불안을 느끼는 것과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이 아버지들은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감각은 정확했다. 맞지 않았다. 하지만 왜 맞지 않는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그 구조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불안은 감각이다. 구조는 지도다. 감각만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낡은 지도를 놓으려면 새 지도가 필요해요. 새 지도를 그리려면 먼저 낡은 지도가 왜 틀렸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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