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입시의 디커플링

4. 입시와 교육의 불협화음

by 송영광

한국 교육부도 이 간극을 모르지 않았다. 2022년 12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했다. "단편적 지식의 습득보다 학습한 내용을 삶의 맥락에서 적용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핀란드의 교육 철학이 아니다. 대한민국 교육부의 공식 문서에 적힌 문장이다. 학생의 주도성 강화, 고교학점제를 통한 과목 선택권 확대, 삶과 연계된 교육, 디지털 소양의 기초 교육화. 방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좋은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이 방향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방향이 맞다고 해서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네비게이션이 "좌회전"이라고 외쳐도, 핸들이 잠겨 있으면 차는 직진한다. 새로운 교육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평가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동작하려면 내신이 절대평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내신이 상대평가로 유지되는 한, 학생들은 자기 적성에 맞는 과목이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과목을 선택할 것이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평가의 틀이 그 자유를 다시 가둔다. 2023년 10월, 정부가 내놓은 2028 대입 개편안은 기대를 빗나갔다. 수능은 여전히 상대평가. 내신은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단순화했지만, 상대평가 등급을 병기했다. 개정 교육과정의 이상과 입시의 현실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다. 미래 역량에 맞추면 대학 가기 어렵고, 입시 교육에 맞추면 미래가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기 어려워졌다. 양쪽 다 맞출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부모 사이에서 쓴웃음이 돌았다. "교육부는 왼발과 오른발이 다른 방향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


교육과 입시의 디커플링. 한쪽은 미래를 향해 달리고, 다른 한쪽은 과거에 발이 묶여 있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한국에서 유독 심하다. 스탠퍼드 대학 컴퓨터공학과 정원이 600명 늘어나는 동안, 서울대는 25명밖에 증가하지 못했다. 24배의 차이. 같은 OECD 회원국 사이에서 벌어진 격차다. 현장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없다고 난리인데, 공급 파이프라인인 대학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관료 조직이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부 공무원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관료 조직의 DNA 자체가 안정과 합의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술은 한 사람의 발명으로 하루아침에 바뀌지만, 교육과정은 수십 개 위원회와 수백 건의 공청회를 거쳐야 한 줄이 바뀐다. 그 사이에 우리 아이들이 볼모로 잡혀 있었다.


앞 장에서 아버지들이 느낀 불안은 바로 이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감각. 그 감각은 정확했다. 맞지 않았다. 교육 시스템이 가르치는 것과 세상이 요구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매년 넓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이 시스템을 바꿀 수 없으니 시스템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시스템은 아이에게 "좋은 대학에 가라"고 말한다. 세상은 아이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두 목소리 사이에서 아이는 찢어진다.


당신이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부모라고 해봅시다. 아이가 로봇을 좋아해요. 만들기를 좋아해요. 코딩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중학교 내신이 곧 시작돼요. 학원을 끊어야 한다. 어느 학원? 코딩 학원을 끊고 수학 학원을 늘릴 것인가. 아이의 눈빛과 입시의 현실 사이에서, 부모는 매 학기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대부분은 입시를 택한다. 아이의 눈빛이 꺼지는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인류는 지식을 벽돌 쌓기 방식으로 배워왔다. 복잡한 문제를 잘게 쪼개고, 수학 공식이나 과학 법칙 같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차곡차곡 정답을 쌓아 올렸다. 학교에서 배운 모든 공부가 이 방식이었다. 벽돌 하나하나를 정확한 자리에 놓아야 집이 된다. 한 장이라도 빗나가면 무너진다. 이 방식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수포자가 되었고, 코딩을 배우는 중학생이 앱을 완성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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