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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랖겪처 Sep 12. 2021

운전자 14FC, 응답바람

클라우드 펑크(Cloudpunk), 2020

Ion Lands가 개발하고 2020년 4월 23일 최초 발매한 <클라우드 펑크(Cloudpunk)>를 PS4로 플레이했다. <클라우드 펑크>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어드벤처 RPG로, 플레이어는 운수기업 '클라우드 펑크'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배송기사 '라니아'가 되어 작품의 중심이 되는 도시 니발리스를 누비게 된다. 

    니발리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뒤라 추정되는 미래의 도시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다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빌딩 같은 이 도시는 해수면부터 구름 위의 상공까지 층층이 나뉜 수직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구역에 거주하는 이들의 계층화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라니아는 HOVA를 타고 인공지능 인격체 '캐머스(원래는 개의 형상을 한 기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라니아가 일을 시작하며 운송차량인 HOVA에 이식되었다)'와 함께 온 구역을 다니며 동부지역 출신 외지인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본다. 때로는 라니아가 '니발리스인'들에 있어 바라봄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클라우드 펑크>의 진행은 아주 단순하다. 본사의 오퍼레이터를 통해 들어온 배송 업무를 받아 클라이언트에게 그대로 나르기만 하면 된다. 때문에 종일 우중충하거나 비가 내리긴 해도 니발리스는 그런대로 평화롭게 굴러가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다. 운전이 익숙지 않아 HOVA를 여기저기 들이받고, 터미널을 지날 때마다 과속차량에 뒷범퍼를 치이다 보면 미래에도 운전은 쉽지 않은 일임을 통감하게 된다. 진상이 따로 없는 클라이언트들을 만나기도 하고, 대놓고 수상한 냄새가 나는 업무를 수주해야 할 때도 있다. 구역을 가리지 않고 있는 대로 발품을 팔아 일하다 보면, 문자 그대로 밑바닥에서부터 구름 위까지 삶을 여과 없이 마주하게 된다. 도시에서의 삶을 거부하고 가장 아래 구역인 환풍구에 모여 자급자족하는 '수분농부'들, 대성하여 부촌으로 이주한 안드로이드와 인간 부부, 추리소설 같은 말투를 쓰는 특이한 안드로이드 탐정, 껍데기뿐인 명성만을 남긴 채 자신을 잃게 된 팝가수 등등. 초반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배송 업무는 니발리스의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역동적이어지며, 때에 따라 라니아는 어떤 사안에 대한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 등을 필두로 한 사이버펑크 SF 세계관과 주제의식의 범람은 이제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클라우드 펑크>는 이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복셀 그래픽으로 구현된 세계관은 작품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릴 뿐더러 제법 방대해서, 잠깐의 여유를 내어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으며 니발리스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작중 배경이 근미래임을 감안했을 때, 온 사방이 'うどん', 'カラオケ' 같은 네온간판으로 뒤덮여 있음에도 도쿄라는 도시가 아예 잊힌 듯 다뤄지는 내러티브는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인물 모델링은 평면적이어서 포트레잇과 그리 유사하진 않지만, 각 인물들이 가진 뚜렷한 개성과 목소리 덕에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선택과 결과'라는 요즈음의 게임 시나리오 작법 트렌드를 작품에 녹여내고자 한 부분들 또한 인상적인데, 라니아의 선택이 도시의 사소한 부분부터 니발리스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쳐 나타난 결과들은 <클라우드 펑크>의 생동감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든다.


    <클라우드 펑크>는 사이버펑크 SF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은 게임도, 단시간에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게임도 아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HOVA를 몰며 라디오를 듣듯 라니아의 여정에 함께 하다 보면, 어느새 니발리스에 스며들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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