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일아트 대망했다
퇴사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것은 엄지 손가락에 스페인 국기를 네일아트 하는 것. 상상 속 나는 밝고 유쾌한 스페인 사람들에게 내 엄지손가락으로 '따봉' 포즈를 취하며 그들의 환심을 사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네일아트를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여러 칼라를 한 손톱에 쓰고 큐빅을 올리는 것은 다소 지갑의 출혈이 필요한 일임을. 게다가 스페인 국기 칼라는 매우 과감하다. 그렇지만 당돌한 여행을 위해 결단했다. 출발 전 날에야 포르투갈 일정이 더 긴데 어째서 다른 쪽 엄지손톱엔 포르투갈 네일아트를 하지 않았나 싶어 후회하기도 했다.
내 네일아트는 단 한 번도 바르셀로나인들에게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다. 우선 따봉 포즈를 취하는 그런 과감한 리액션이 동양 여자에게 쉬이 나오지 않는 일이며, 손이 작은 나는 당연히 손톱도 작아서(손톱이 작으면 네일아트 가격을 좀 깎아주었으면 좋겠다.) 시선이 꽂히기 어렵다.
결정적인 것은,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이 아니었다. 적어도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겐.
스페인 국기와 비슷한 칼라이기는 하나 다소 스트라이프가 잘다는 느낌이 드는 깃발이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을 뒤덮고 있었다. 뒤덮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깃발이 이리 많은 도시는 처음이었다. 애국심이란 것이 폭발하는 미국보다도 많았다.
하루 코스의 가우디 투어를 신청해 가이드와 함께 전용버스로 이동하며 바르셀로나와 관련한 이모저모를 들었고 모든 답이 가이드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독립하려 한다고. 저 잘디잔 스트라이프의 깃발이 카탈루냐 지방(바르셀로나가 '시'라면 카탈루냐는 우리나라 식으로는 '전라도' 경상도'와 같은 '도'의 개념)의 주기라고.
바르셀로나의 가정집이나 가게 곳곳에 묶여있는 노란 리본은 깃발만큼이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역시 카탈루냐에서 자체적으로 치른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찬반 투표에 관여된 바르셀로나 시의원들의 수감과 관련돼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축구를 좀 좋아했더라면 미리 알았을 텐데. 마드리드랑 바르셀로나 경기가 유명하단 것을 알았지만 이 또한 이런 정치적 문제가 관여된 건지는 몰랐지... 내 스페인 국기 네일아트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저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지 지금?
설민석 못지않았던 가이드의 명쾌한 설명을 들으며 나는 네 개의 손가락으로 엄지손톱을 쏙 감추었다.
그리고 이런 카톡을 보냈지.
"나 바르셀로나에서 주먹 쥐고 다녀야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