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또 뭘 잃어버릴지 기대되기도 한다
어라? 핸드폰 어디 있지?
하루면 이런 단말마 외침 한 번쯤은 뱉어줘야 나다울 정도로, 이젠 이런 소리가 일상이라는 친구들의 얼굴이 나 역시 익숙할 정도로.
나는 물건 잃어버리기 대마왕이다. 잃어버린 물건의 세계가 있다면 내 지분이 상당할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번호키를 쓰지 않던 어릴 때, 내가 잃어버린 우리 집 열쇠만 5개는 넘었다. 늘 나 때문에 새로 열쇠 구멍을 달 때마다 엄마의 잔소리를 배가 터지게 들었다.
8살 무렵엔 집에 오고 몇 분 후 연이어 들어온 엄마가 "너 청자켓 어딨어?"라고 했고, 아파트 1층 로비에 흘린 내 옷을 든 엄마의 무시무시(아직도 생생한 걸 보니 나의 덜렁거림에 열이 받을 대로 받았던 듯하다)한 얼굴이 선하다, 허리에 묶어 놓은 청자켓이 왜 하필 아니 사실 다행히도 현관 로비에 떨어져 있었다니.
대학교 1학년 때는 버스에서 내려 영화관에 가는 길에 "너 뭐 잃어버린 거 없어?"라며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었다. "없는데?" "있을 텐데?" 아차, 지갑이 없네? 당시 사용하던 지갑이 독특한 디자인이었는데, 내가 마침 종점에서 내렸고 그 버스가 종점을 돌아 첫 번째 정류장에서 내 친구를 태운 것이다. 그리고 맨 뒷좌석에 있는 누가 봐도 내 것인 지갑이 있어 열어보니 정말로 내 것이었던 것. 그 이후로도 그 지갑은 버스에서 또 한 번 잃어버렸는데 선량한 시민이 찾아주었고, 최종적으론 일본 여행 중 돌아오는 지하철에 흘려서 영원히 잃어버렸다.
여의도 공원 벤치에 6개월 된 신형 모토로라(완전 추억의 브랜드네 이제) 럭셔리폰을 두고와 도둑놈과 사례비로 한 판 뜨고 결국엔 잃어버렸고, 고속버스에 노트북을 두고 내린 적도 있고(찾았다!) 화장품 파우치도 두고 내린 적도 있고(새 제품이었던 샤넬 섀도 팔레트만 홀랑 없어졌다!), 공항 벤치에 가방을 두고 수속을 밟다 깨달은 적도 있고, 버스에 물건을 두고 내려 종점에 있는 사무실까지 찾으러 간 적도 있다. 토익 시험을 봤던 고등학교 책상 서랍에 두고 온 주민등록증은 당시 학생들이 담배나 술을 사는데 퍽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라 예상된다. 망할.
사실 열거하자면 끝이 없고 스크롤 역시 끝이 없을까 봐 적당히 덜어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분실물은 바로 '여권'이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2012년 여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단기 연수차 머물던 때. 친구와 함께 힐튼호텔 1층의 스벅에서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워낙 평소에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데다 가방도 벌레 벌레 들고 다니는 내가 역시나 가방 입을 한껏 벌린 채로 절반쯤 튀어나온 여권을 방치하고 있으니 "여권 챙겨, 빠질 거 같아"라고 친구가 경고했으나. 가뿐하게 무시.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는 정말로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1주일 후면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나는 여권이 없었다.
자주 다니는 모든 곳을 뒤지고 뒤져도 3일 간 여권의 ㅇ도 볼 수가 없었을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한국대사관에 전화했다.
"저... 제가 여권을 잃어버렸는데요"
"OOO(내 이름) 씨세요? 여권 여기 있어요"
네?
다행히 힐튼호텔의 한국인 직원이 내 여권을 주웠고 바로 대사관에 맡긴 것. 이런 경우가 얼마나 흔치 않으면 대사관 직원은 바로 내 이름을 외쳤을까.
누군가 나에게 "난 뭘 너무 잘 잃어버려서 큰일이야" 할 때면 나는 늘 "난 미국에서 여권도 잃어버렸어"라고 한다. 그럼 난 모두를 이길 수 있지.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적고 있는, 그런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