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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자 May 20. 2019

샌프란시스코는 허무하다

몇 년 전 블로그에  샌프란시스코 글이 있어 조금 다듬어 브런치에 올려본다.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간다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기록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애증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간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본다.


껌껌한 내 방에서 일어나(에즈기라는 터키 친구랑 두 달을 룸메로 지냈는데, 2층 침대에서 내가 2층을 에즈기가 1층을 썼다. 나라면 한 번 쯤 '바꿀래?' 라고 물어봤을 텐데... 세상사 다 내 맘 같지 않지 역시! 넘나 배려 없는 터키 부자 에즈기!), 꼴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영화에서만 보던 정말 옛날 엘레베이터를 타고 5층 키친으로 올라가 달디 단 씨리얼에 찐하디 찐한 미국 우유를 부어 아주 자극적인 맛으로 아침을 열고 싶다. 그리고도 배가 안차면 찐하디 찐한 초코 머핀 하나를 더 먹을 거다. 돈이 똑 떨어졌을 때쯤엔, 키친에서 머핀 몇 개를 챙겨 점심으로도 먹곤 했는데.. 미국의 머핀은 참 크고 찐한 맛이었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질리는 그런 맛.


내가 살던 오페럴길에는 걸인들이 많았는데(샌프란시스코 자체가 걸인이 많다.) 그 사람들 앞을 지나는 게 그렇게 무섭고 싫었다. 당연하게도. 그런데 이제 그나마도 그립다. 흑인 아줌마가 누군가를 향해 아주 대차게 소리 지르던 그 모습!


파웰역 쪽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오빠들을 넋 놓고 구경하다 트램이 들어서는 모습도 보고 싶다. 역 뒤쪽 블루보틀에 가서 카페모카도 먹고 싶다. 단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도 잡은 그 커피.
 


살 것도 없고 살 능력도 없으면서 웨스트필드를 그렇게 드나들었던 그 때처럼, 쥬시꾸뛰르에서 핸드폰 케이스를 들여다보고 마이클코어스랑 토리버치를 기웃대고 싶다.


주말에는 파머스마켓에 갈거다. 시식으로 먹었던 염소치즈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는데. 그리고 블루보틀(성수동 블루보틀을 아직 가보지 못해서 아직도 샌프란시스코 블루보틀로 추억팔이) 가판대에서 팔던 카페오레 한 잔을 들고 뚤레뚤레 시장을 걷고 싶다!


샌프란시스코에 같이 머물렀던 친구 집에도 가고 싶다. 친구의 플랫메이트는 태국 친구들이었다. 그 집에서 나던 특유의 향신료향, 그 냄새가 문득 생각이 난다.


그리고 친구 동네의 시리얼이 빼곡하고 스트링치즈가 소름돋게 쌌던 마트! 그 곳에 컵케이크와 빵이 산처럼 쌓여있던 것이 그립다. 그런 식료품(값싸고 달고 양 많은)이 미국 저소득층 비만의 원인이라던데, 당시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던 내가 그것을 증명한다.


제일 좋아했던 피어39도 가고 싶다. 햇살이 막 쏟아질때 사람 적당한 그 곳을 입에 먹을거 하나 물고 기웃기웃 걸어다니는 기분! 그러다 인앤아웃 앞을 지나가며, 그 유명한 인앤아웃이 내 눈 앞에 있다는 것에 감격하고 싶다.


그래도 내 취향은 수퍼두퍼다


학원 쉬는 시간이면 반 친구들과 우루루 스벅으로 몰려가,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기 위해 그토록 먹어대던 그린티프라푸치노에 자바칩을 추가 하련다.




샌프란은 나에게 허무다.


유명한 곳이라 해서 가보면 생각보다 별게 없어 당황스러웠다, 예를 들면 롬바르드 길.


가 본 사람은 안다, 정말 별 거 없다


그리고 나에게 미국은 첨단도시였는데 이 도시는 내가 사는 서울의 20년 전 같았고 너무나 패셔너블하지 못한 미국인들은 또 어떤가. 클럽에도 말도 안되는 꼬라지(이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로 오던 그 사람들.


마트에 가더라도 생얼로 나서는 걸 고민하는(사실 요즘은 안한다, 그 땐 했다;) 한국인인 나에게 그 모습이 그렇게 초라해보일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면적이나 인구가 정말 작은데 우리나라로 치면 속초라고 하는 게 정확하려나. 그런데 생활물가는 높다 못해 뉴욕보다 심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날씨.


따뜻한 도시라더니, 한 여름에도 저녁 기온이 8도이곤 했다. 한낮 온도도 20도 내외라 한국의 여름 날씨에 습기만 빼면 샌프란시스코 날씨려니 했던 나에겐 정말 큰 혼란과 실망이었다. 게다가 툭하면 안개가 끼고 바람은 어찌나 불던지!


그러다 한 번씩 말도 안되게, 캘리포니아스럽게 맑은 날이 되면 또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날씨가 이러니 인터넷에서 보던 어그신고 나시를 입은 기상천외한 미국인들이 실제 눈앞에 존재하곤 했다.


그런데 그 도시가 너무 그립다. 결국은 이럴 줄 알았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리움'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걸 설명 못하는 나도 답답하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도시에요...


뉴욕에 갈걸, 엘에이로 갈걸 여러 번 생각했지만 다시 가도 샌프란시스코에 가지 않을까?


샌프란시스코는 허무하다. 그리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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