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진에서 인터뷰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데, 한 달간 매일 주는 질문들에 답해 나를 인터뷰한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것.
요즘 열일하는 컨셉진이 궁금해서 기웃대다 거금 7만원 가량을 들여 결제해버렸는데, 어이없게도 메일로 날아오는 질문을 거의 이주일 정도가 지난 후에야 알아서 엄청나게 밀려있는 상태다. 나 답다.
11일차 질문의 답변을(이 시점은 이미 21개 질문까지 전달된 상태이나...) 작성하다가 추억에 잠겨서 브런치에도 남겨두려고 쓰는 글.
눈 덮인 한라산에 올라본 적이 있나요? 전 있답니다. 한라산에 오르는 건 제 오랜 버킷리스트였어요. 2005년 드라마인 <내 이름은 김삼순>이 저의 인생드라마인데요. 삼순이가 오른 한라산을 저도 꼭 한 번 오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한창 취업이 안되어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때에, <아빠 어디가>를 봤고 그 때 10준수가 눈 덮인 한라산을 오르는 장면이 나왔어요. 잊고 지냈던 저의 버킷리스트가 떠올랐고 이것 하나를 이루는 것만으로도 바닥을 친 제 자존감이 한라산 초입 정도만큼은 올라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행기를 예매하고 며칠 뒤에 바로 2박 3일의 제주도행을 떠났어요. 목표는 오로지 한라산 등반이었어요.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지금은 달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MBTI도 I로 시작하는(TMI지만 INFJ임), 몇 번을 해도 무조건 I인 내향적인 사람인데요. 4인이 이용하는 도미토리에 혼자 가는 것도 저에겐 정말이지 큰 도전이었습니다.
한라산은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산은 아니더라구요. 숙소에 도착한 그 날도 날씨 탓으로 입산이 금지되었다며, 갈 수 있을런지 싶다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말을 들었거든요. 하지만 하늘이 도왔고 무사히 한라산에 오를 수 있게 됐어요. 저는 새벽에 일어나는 걸 정말 끔찍하게 싫어해요. 눈 떴을 때 바깥이 깜깜한 걸 용납할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그 날은 4시반이라는 말도 안되는 시간에 숙소를 나서면서도 마음이 가뿐했어요.
그렇게 한라산을 올랐답니다. 티비에서 보던 대로 하얀 눈이 덮여있고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있더군요. 꽁꽁 싸매고 갔지만 중간 부터는 더워서 옷도 가볍게 입은 채 올랐어요. 사실 그 때 감기가 걸려있는 상태라 몸도 좋지 않았지만, 이 때가 아니면 다시 그런 결심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오기로 끝까지 올랐어요. 산 중턱 즈음에서 물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도 한 병 없이 산을 올랐는데 대피소에서도 물을 안팔더라구요. 라면 국물에 약을 먹었던 기억이 아주 또렷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백록담. 정말 멋지더라구요. 저 자신이. 나를 위해 나를 깨는 일을 한 제가 장했어요.
모르는 아저씨에게 사진도 한 장 부탁해서 엘사같은 사진도 한 장 남아있네요. 2014년 사진이라 화질은 저 세상입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중에는 산악회 어머님, 아버님들의 관심도 한 눈에 받았답니다. 아가씨가 혼자 산에 왔냐며 계속 말동무를 해주시더라구요. 위에 말했듯 I인 저에게 꽤 힘든 상황이긴 했지만 그 당시에도, 지금도 꽤 즐거운 기억이에요.
무려 카카오스토리에 올려뒀던 사진입니다.
오랜 꿈을 실천한 것, 생각한 자리에서 바로 저지른 것,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한 것, 평소의 나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 모든 것이 완벽히 멋졌던 당시의 저에요.
컨셉진 덕에 기억도 더듬어보고,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