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나의 인생의 어떤 한 부분이었지만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땐 어렸을 때 대로, 컸을 땐 또 그럴만한 이유(핑계)들이 있어 잘 모르고 살았다. 어릴 적엔 그래도 일 년에 두 번쯤, 명절 때마다 그녀를 만나곤 했는데 그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희미하게 웃고 흐릿하게 말을 하고 느리게 따라오던 A가 기억난다. 이런 기억마저도 흑백이며 이상할 정도로 A와 관련된 뚜렷한 에피소드가 남아있지 않다.
황망히 사망소식을 듣고 찾아간 빈소에는 총천연색의 A사진이 걸려 있었다. 옥색 상의와 자줏빛이 도는 입술이 어색한 영정 사진의 기운을 애써 돋우려 하고 있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A의 입매는 내가 기억하던 그 얼굴이 맞았다. 직사각형 나무 안에 기다랗게 누운 A의 몸 위로 꽃들이 가득했다. 생전 한 번 건넨 적 없는 카네이션을 쥐어 가슴 곁에 놓았다. 평안히 누워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할 말이었다. 그것은 그냥 유족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장례지도사는 A의 눈이 반쯤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노화로 지방이 소실되어 그렇다 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설고 이상한 모습인 가운데, 희미하게 뜬 A의 눈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내가 평생 기억하던 A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이제 40도 넘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네 살이 되기 전까진 A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4세 이전의 기억이 회상 가능하진 않았지만 분명 나의 삶 어딘가엔 A의 기운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의 시작과 내 아버지의 시작이었던 A의 삶에 대해 두런두런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발인이 끝나고 아버지는 A를 봉안당에 안치했다. 외롭고 외로운 삶이었던 A는 일생의 대부분을 홀로 섬에서 지냈는데 나는 저승에서라도 봉안당에서라도 A가 많은 이들과 부대끼길 바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걱정도 없으며 고통의 원천이 될법한 것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이길 바란다. A가 그곳의 누구에게라도 온전한 사랑을 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