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연도감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26년. 뭐 어쩌란 말인가. 일원동의 대형 병원 안에서 내 생년월일이 적힌 바코드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옛날 같으면 '너는 몇 살이니'라는 질문에 '열 살이요, 스무 살이요' 했을 테지만 이제는 잘 감각이 서지 않는다. 내가 서른 둘이었나 서른 셋이었나. 생일이 지났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악착같이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머리를 굴려본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 맞다. 이제 2026년이지.
2025년은 나름대로 착실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살아가는 방식에 변화가 많이 생겼다. 그런데 착실히의 기준이 뭘까. 변화의 기준은 뭘까. 문득 퍽 우울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노래하며 펜을 처음 잡았던 나. 그런 외로움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 광장동의 한강 길을 걸으며 한없이 울었던 나. 그런데 지금 2026년의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충분히 변했다고 볼 수 있는 건가.
사람은 누구나 약한 존재다. 누군가는 나를 심지가 굳은 강한 사람으로 보지만, 그런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약하다. 그런 점에서 사실 나 또한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환경과 시선이 변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주변까지 마치 나인 것처럼 지내왔을 뿐이다. 조금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면,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일을 잘하고 똑똑한게 아니다. 그들은 그 회사의 인프라까지 자기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것 뿐이다. 주변의 사람, 환경, 가진 것들 모두가 한꺼풀씩 벗겨지고 무너질 때면, 그땐 한 없이 여린 알맹이가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가지려고, 지키려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은 성벽을 쌓으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 아닐까. 발버둥치는 것 아닐까.
결국 나는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게 세상과 시간의 무서움이다. 내가 어찌되든 간에 상관없이, 주변은 돌아가고 시선은 변한다. 온갖 SNS에서는 중국이 당장에라도 나라를 집어삼킬 것처럼, IMF가 오고 원화가 똥값이 될 것처럼, 그리고 AI가 우리를 모두 실업자로 만들 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는 그런 세상의 잡도리들을 작은 기계 토막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만약 그 모든 게 어차피 올 것이라면, 한번에, 깔끔하게 닥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차례차례 오지 말고. 한번에. 모두가 한번에 실업자가 되고 모두가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고 모두가 중국어를 쓰는 세상으로.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보고있자면 가끔 그들은 정녕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뭐. 어쩌란 말인가. 나는 그저 내 생년월일이 적힌 바코드를 바라보며,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런 나를 한 아주머니가 '젊은 총각이 여긴 왜 왔나' 하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본다. 그래. 이 표정이지. 병원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이 담긴 곳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