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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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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빗 babbit Apr 12. 2023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의 마음가짐으로

넷째 날, 4월 9일 일요일

한국 여행 넷째 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일요일 아침도 파랬다. 미세먼지도 보통이었다. 밖을 걷기에 좋은 날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주 일요일은 아쉽게도 주민센터가 쉬는 날이어서 운동을 하러 가지는 못했다. 다음 주 일요일은 연다고 하니 안심이 됐다.


오늘 칼리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친구에게 주기 위해 초콜릿부터 화장품에 직접 구운 비스코티까지 다양한 것들을 담은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투명한 손가방이라 안이 다 들여다 보여 선물을 받을 친구가 굉장히 부러웠다. 내가 그 선물 손가방을 궁극의 선물 가방(the ultimate present bag)이라고 칭하자 칼리가 웃었다.


칼리와는 이따가 저녁을 먹을 때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지유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장을 보기 위해 길을 지나는데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중국 음식 냄새였다. 아직 점심을 먹지 않은 우리는 대번에 메뉴를 결정했다. 짜장면과 짬뽕을 먹기로 했다. (사실 지유는 아무것도 모르니 내가 물어보고 지유가 동의하는 식이었다.) 장을 보고 와서 짜장면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자리에 앉고 메뉴판을 받자마자 미리 얘기해 놓은 대로 짜장면과 짬뽕을 하나씩 시켰다. 사실은 오늘 저녁에 망원 역 쪽에 있는 비건 중국 음식점을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한 번 가는데 한 시간이나 이동해야 해서 다른 날에 그곳에 갈 일이 있을 때 가기로 했다. 짜장면을 못 먹는 게 굉장히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먹게 돼서 사실은 조금 기뻤다. 지유는 고기가 들어가는 짜장면과 짬뽕을 먹어 보고 비건 짜장면과 짬뽕을 비교해 보면 되니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1. 우리가 간 중국집(왼쪽), 짬뽕과 짜장면(오른쪽).


짜장면과 짬뽕은 정말 맛있었다. 짬뽕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몇 번 먹어서 엄청 반가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짜장면은 굉장히 반가웠다. 나는 한국에 왔을 때 중국 음식을 먹으러 거의 가지 않았었다. 그래서 가끔 짜장면을 먹고 싶은 날이 있었는데 이번에 먹고 가서 다행이었다. 밥을 먹는 중에 지유가 갑자기 입 안에서 터지는 뭔가를 먹었다며 뭐냐고 물어봤다. 도대체 그게 뭘까 계속 고민하다가 번뜩 생각이 났다. 미더덕이었다.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해산물을 먹지 않는다. 짬뽕에 든 해산물 중에는 오로지 홍합만 먹는다. 그러다 보니 미더덕이 있다는 걸 깜빡했었다. 지유는 몰랐으니 미더덕을 먹게 된 건데… 지유는 이제부터 해산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의심의 안경을 끼고 해산물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숙소가 한강과 멀지 않기 때문에 다음으로 한강을 산책하기로 했다. 근처에 우리가 있는 편과 다른 편을 이어주는 대교 하나가 있었다. 꽃도 심어 놓고 굉장히 예쁜 다리였다. 우리는 다리 중간에 앉아서 한강 뷰를 감상했다. 멀리 롯데 타워도 보였다.


사진 2. 한강 뷰(왼쪽), 대교 아래에서 트럼펫 공연(오른쪽).


산책을 하고 나니 쿙가가 우리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쿙가는 내 고등학교 동창인데 독일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이번에 휴가를 받아 나보다 먼저 한국에 와 있었다. 한국에 있는 날짜가 겹쳐 보기로 했었는데 그 날이 오늘이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한 인사동으로 향했다. 내가 한 번도 인사동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쿙가가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번에 한국을 여행하는 여행자로서 이렇게 여행하기 위해 한 번도 들러 본 적이 없다고 포장해야겠다.


인사동을 가는 길에 낙원 상가가 보였다. 티비에서만 보던 곳인데 직접 눈으로 보니 조금 신기했다. 그곳을 지나다가 조금 신기하게 보이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더니 쿙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거,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돌멩이도 예쁘다고 찍는 거랑 뭐가 달라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니 정말 나는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들의 마인드로 여행을 하는 중인가 보다. 근데 중간이 끊겨 있는 횡단보도를 얼마나 자주 보냐는 말이다!

사진 3. 중간이 끊겨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횡단보도.


앞으로 쭉 가다 보니 드디어 인사동이 나왔다.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어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덜 붐벼서 좀 의외긴 했다. 그래도 전통 거리로 유명하니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지유가 지나 가다가 태극당이라고 써 있는 간판을 읽었다. 그게 빵집인 걸 알게 되자 우리는 거침없이 한 번 볼까하고 들어가 봤다. 빵을 많이 파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조금 비싸 보여 우리는 모나카 우유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쿙가가 우리에게 사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거리 옆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아이스크림은 우유 맛이 굉장히 진하게 나서 맛있었다.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랑 확실히 달랐다.


사진 4. 태극당 입구(왼쪽), 모나카 우유 아이스크림(오른쪽).


그러고 나서 거리를 지나가다가 지유가 기념품을 사고 싶다고 해서 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다양한 기념품을 팔았는데 거기서 되게 예쁜 전통 문양이 있는 한 텀블러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이건 무조건 사야겠다 싶었다. 가격이 조금 비쌌지만 나는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의 마인드를 가졌기에 괜찮았다.




사진 5. 인사동의 한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수납함(왼쪽), 직접 구입한 학 문양이 있는 텀블러(오른쪽).


기념품을 잔뜩 사고도 저녁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우리는 아트 갤러리를 보러 갔다. 조그마한 갤러리들이 많았는데 귀여운 작품들이 많았다.


약속 시간이 다 돼서 저녁을 먹기로 한 음식점에 향했다. 가서 칼리와 칼리 친구를 만났는데, 하는 말이 인터넷에는 영업 중이라고 나오는데 음식점이 닫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하여 우리는 저녁 먹을 곳을 찾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인사동이 관광지이니 음식점이 많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처음 간 곳은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고, 다음으로 가고 싶었던 가게는 일요일이어서 닫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옆 집을 가려고 했는데 인원 4명까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총 다섯 명이었기 때문에 두 명, 세 명 나눠 앉아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또 다시 길을 떠났다. 가는 도중 본 음식점들은 많은데 영업을 안 하는 음식점들이 많았다. 한 가게는 비빔밥을 파는 곳이었는데 저녁 6시 반까지만 손님을 받는다고 그랬다. 일요일 저녁 인사동에서는 야채를 위주로 파는 가게를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길거리를 좀 걷다가 그냥 칼국수 집을 가기로 했다.


사진 6. 그리하여 도착한 칼국수 집.


칼국수 집에서의 만둣국은 맛있었다. 오래 걸려 가까이에 있는 음식점 중 괜찮겠다 싶은 집을 찾은 거라 엄청 많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진 7. 다... 먹은 만두국. (먹기 전에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다.)


그러고 우리는 무엇을 할까 하다가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우리도 노래방에 가자고 미리 얘기를 하긴 했었는데 이렇게 여럿이서 가니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진 8. 노래방 근처 길거리(왼쪽), 노래방 기계(오른쪽).


1시간어치의 가격을 계산하고 돈을 낸 사람으로 노래방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칼리와 지유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가수 퀸의  노래를 예약하고는 엄청난 무대를 보여줬다. 둘을 제외한 한국인 세 명은 굉장한 환호로 보답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멋진  무대였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노래방을 한 번 더 가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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