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광화문, 문화의 가치를 생각하며.
지난 3월 21일, BTS가 광화문에서 컴백 무대를 마쳤다.
세계 각지의 BTS 팬이라는 아미들이 한국으로 모여들었으며, 광화문만이 아닌 서울 곳곳 나아가 지방으로까지 뻗어 가며 관광하는 흐름을 보였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단지 21일 하루만이 아니라 여러 날을 한국에 머문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k-pop이나 아이돌 그룹에 큰 관심이 없다. 수년 전, BTS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각종 유명 프로그램에 섭외되는 등 한국 아이돌 그룹으로 쾌거를 달성했다고 할 때에도 '그렇게 노력하던 분야에서 드디어 조금 조명받는 그룹이 나왔구나. 오래 가면 좋을 텐데.'라고 여기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문화의 가치에 무지했음을 깨달았던 건 그들이 유엔 총회 연설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서였다.
세계에서 주류라고 할 수 없는 한국, 그 안에서도 k-pop을 겉핥기로 보는 내 시선에선 국내에서 완전한 메인도 아닌 듯했던 방탄소년단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하다니.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존재가 결합되는 순간, 나는 스스로 우리가 가진 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보도를 계기로 화양연화를 비롯해 그들의 음악, 한국 문화를 녹여내어 극찬받았던 MMA 무대, 'IDOL' 노래에 들어간 한국의 전통 장단 등을 접하면서 한 번 더 나의 무지에 부끄러워졌다.
이후로는 이들의 행보에 적잖은 자부심을 느꼈다. 딱히 팬도 아니고 그들의 노래를 매번 찾아 듣지도 않는데 어디선가 그들이 어떠한 성과를 달성했다고 하면 뿌듯함이 앞섰다. 해외를 배경으로 하는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몇 년 전과 달리 한국을 알고 한국의 인사를 아는 사람들이 확연히 늘어난 것을 보거나, 세계적으로 한글이 전보다 관심을 받고 있다는 기사들을 볼 때면 문화의 가치가 실로 대단하다는 걸 절감했다.
물론 BTS가 다는 아니다.
2020년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쓰는가 하면, 배우 윤여정 역시 이듬해 같은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최근 k-pop을 소재로 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또한 오스카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덕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층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월 21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BTS의 컴백 무대가 광화문에서 이뤄졌다.
외신은 무대 며칠 전부터 해당 공연을 보도하며 이 공연이 가져올 효과와 가치, 의의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 그 며칠간에 걸쳐 해외 관광객은 거대한 행사에 기대를 보이며 속속들이 한국으로 모여들었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역에 생중계되며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복궁을 시작해 광화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았으나, 대한민국 중심부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순간을 모두가 지켜볼 수도 있었다.
적어도 세계의 관심이 한국에 있었다는 점에서 자국민에겐 분명 나라의 경사라 할 만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일부는 이것이 가져올 각종 효과를 내다보며 자축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삿대질이 난무하고 있다. 그 이유를 통틀어 말하자면 적잖은 불편을 끼친다는 점이었다.
맞는 말이다. 공연 하루 전 3월 20일 오후 9시부터 공연 하루 뒤 23일 오전 6시까지 33시간 동안 교통이 통제되었으니 시민들은 전에 없는 일에 불편을 겪었다. 게다가 해당 날짜와 시간에 결혼식을 올리는 당사자와 하객들에게도 불편을 끼쳤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동원되며 단 한 시간짜리 공연에 너무 많은 인력과 세금을 들인다는 등 비효율성을 꼬집는 비판도 쏟아졌다.
사실 이러한 의견들을 처음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 꽤 놀랐다. 세상이 정말 이 공연을 두고 이런 이야기만 하는 건지, 내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건지, 곱씹을수록 혼란스러워졌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도는 얘기가 아닐까. 사람들은 정말 이 공연을 이렇게만 보는 걸까. 이게 정말 낭비라면 이 공연을 앞다투어 주최하려는 해외 흐름은 어떻게 설명되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한 뉴스에서는 공연의 의의와 그것이 가져올 효과를 보도했지만, 또 다른 뉴스에서는 시민들의 피해 상황을 조명했다. 어떤 기사는 이번 공연에서 비롯될 부수적인 결과를 말했지만, 다른 기사는 그곳을 지나가려면 신체 및 소지품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어떤 이들은 공연 한 번으로 얻게 되는 시너지를 언급했으나, 또 어떤 이들은 그 모든 이익이 아티스트와 소속사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라인에서 돌아가는 양상은 후자에 기우는 것 같았다.
더 살펴봐야겠지만, 공연 자체 이익은 우리 몫이 아닐 것이나 이 공연이 불러올 이익이 그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하리라 본다. 외신들이 이번 공연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것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해외에서 본 공연을 높이 사며 그들의 음악, 그들이 그날 입은 의상, 무대의 의의, 장소의 가치 등을 논하던 그때, 정작 본고지인 한국에서는 주변 상권에 재고가 남았다거나 생각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거나, 해서 BTS가 민폐가 됐다는 식의 기사들이 더 많이 재생산되고 있다.
공연이 끝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들이 '아리랑'이라는 앨범 타이틀을 걸고 어떤 노래를 담았는지, 그 노래와 음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왜 그들이 한글이 현저히 사라진 음악을 내어 놓았는지 등등, 이를 논해줄 수 있는 국내 문화평론가나 음악평론가의 의견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찾으면 분명 나올 테지만, 대한민국 언론은 이를 조명해주지 않는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는 기관이 국민들의 흥미도에 치우쳐 자신들의 의무를 등한시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마이크를 돌려 묻고 싶다.
이를 떠나 개인적으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내게 된다.
왜 우리는 우리를 서로 비난하는데 더 많은 힘을 쏟을까.
쏟아지던 비난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들 불편을 감수하며 그날의 공연을 성사시켰다. 또한 무조건적인 옹호는 당연히 피해야 한다.
이처럼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실을 보자면 우리는 좋든 싫든 BTS 보유국이다. 앞서 말한 봉준호 보유국이고 윤여정 보유국이며 k-콘텐츠, k-문화 보유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를 비난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싣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하다면 왜 그런 반응을 더 많이 보이게 되는지 되짚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똑같다. 나 역시 다들 칭찬 일색인 어느 대상을 보면 그 안에 단점을 먼저 찾아내어 비판부터 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문제가 되는 지점을 꼬집어 비틀 때도 많다. 그것이 중립적이거나 색다른 시각이라 판단하여, 합리적 비판이라는 명목으로 이를 선보이는 데 힘쓴다.
그러나 각종 워크숍 공연이나 작가 교육원 등에서 숱한 합평을 거치며 깨달은 건, 좋은 점 또한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건전하고 생산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판은 자칫 비난으로 빠지기 쉽다. 중도를 지키는 비판이라고 할지라도 개선점, 그러니까 대상을 향한 긍정적인 시각이 부재하다면 발전은 불가하다. 발전이 불가하다면 그때부터 비판은 존재할 이유를 잃는다. 그렇기에 대상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를 발전시키기 위한 긍정적인 시각을 표출하는 발언은 그 어떤 비판보다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내가 겪은 합평에서도 그 시각 아래에서 비판이 더해질 때 작품이 구제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합평이라는 특정 상황이 아니더라도, 장점을 인정하는 말과 행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으며 그만큼 힘이 강하다는 걸 깨달을 때가 많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 재단하고 비판하기엔 쉽지만 칭찬하기가 여간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 박하지는 않은지 되새겨볼 일이다.
비단 BTS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영어는 멋지지만 한글은 촌스럽다고 여기거나 각종 상점 간판들에 외국어가 더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전엔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데 한글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어느 10대의 글이 온라인상에 돌아다니는 걸 본 적도 있었다. 한류가 각광받았다는 소식은 꽤 오래전부터 들려왔지만 곧바로 사람들은 그것이 '국뽕'이라며 심취한 사람들을 나무란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많은가 하면, 해외 드라마를 봐야 수준이 높다는 등의 편견도 공존한다.
실제로 봉준호의 <기생충>을 극장에서 보고 나올 때, 일부 관객들이 "이게 왜 인정받은 지 모르겠다"라고 외화를 높이 사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 세계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집중할 때 한국에서는 서사를 탓하며 수준이 낮다는 식의 평을 했다. 불황인 영화계에 희망을 불어넣은 <왕과 사는 남자> 역시 일부에선 수준 미달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
이 또한 근거가 타당하다면 존중받아 마땅할 의견이다. 취향에 따라 외국 콘텐츠나 외국 문화, 외국어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콘텐츠, 한국 문화, 모국어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안타까운 건 우리는 너무 우리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국뽕'을 좀 가지면 어떤가. 집안에서 예쁨 받지 못하면 밖에서도 예쁨 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우리 것을 존중하지 않으면 애써 피어난 꽃들은 머지않아 시들고 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놓친 우리 것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제는 외부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더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겸손이란 이유로 머리 숙이지만 않아도 된다. 이제까지의 쾌거를 우리 힘으로 이뤄냈으니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자부심을 느껴도 그 누구도 우리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중심에서 보면 변방의 나라이지만, 한국은 한국만의 흐름으로 세계화에 발맞추며 때로 우리만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힘을 지녔음을 이러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이제는 조금 즐겨도 좋지 않을까.
어제는 답사 차, 창덕궁을 다녀왔다. 한복을 입고 거닐거나 해설을 듣는 외국인들을 봤다. 자유 관람 후 이곳을 보며 그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세계가 보는 한국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넓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지구의 어느 지점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유가는 폭등했다. 사는 건 팍팍해지기 이를 데 없고 물가는 잡히지 않는다. 나를 비롯해 젊은 층들은 여전히 집세에 허덕이고 미래에 큰 가망을 두지 않은 채 오늘 하루를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한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무슨 대수일 까만은, 문화와 그 가치가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그럼에도 나는 우리 스스로 소인에서 벗어나 대인으로 세계화에 발맞춰 나아가는 세상을 감히 꿈꿔 본다.
막막한 일상 체계가 바뀌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할 테고, 이 커다란 세상이 바뀌려면 거대한 움직임이 일어야 할 테니까.
*커버 사진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5267826?sid=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