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최은영. 2022년 읽고 쓴 기록
그 누나가 따악 니 같았다.
아빠는 몇 해 전, 내가 몰랐던 고모 얘기를 전해주셨다. 아마도 그때가 아빠에게는 형제의 존재를 되새겨 보는 시기였을 테니, 잊고 지낸 자신의 누나가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딸 넷, 아들 둘인 육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던 아빠는 바로 위의 막내 누나와 유난히도 다퉜다고 했다. 들었던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장남이라는 특권을 아빠도 누렸던 모양인데, 모두가 용인해도 그 누나만큼은 봐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참 많이도 싸웠다고.
나는 아빠에게 미안하지만 속으로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장남이라고 특혜 받는 건 치사하니까. 서면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는 아빠를 보며, 장남이기에 남 모를 희생을 감행해야 했던 아빠를 보며 나는 속으로 그런 장난 아닌 장난을 걸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나를 보고 말했다.
그 누나가 따악 니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던 아빠의 표정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의 누나에게 느꼈던 묘한 친밀감을 기억한다.
육 남매 중 유난히 독특했다던 누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누나. 반대를 무릅쓰고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남자와 결혼했던 누나. 시대에 반하며 사랑을 지켰던 누나. 그 신혼집에서 남편과 영원히 단잠에 빠져버린 누나. 남동생과 늘 싸웠지만 그 남동생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된 누나.
아빠는 아마도 연탄가스 때문일 거라고, 친정에서 자고 가라는 말만 들었어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아빠의 말대로 그 누나는 나를 예뻐했을까. 아니면 둘 다 유별난 성질을 내세우며 애증의 관계가 되었을까.
나는 스타벅스에서의 그날, 내가 그 고모와 많이 닮아서 아빠가 나와 많이 싸우나 보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날을 회상하는 지금, 또 한 번 상상해 본다. 엄마 아빠와 대화가 안 통하는 어느 날엔 무작정 누나 집의 대문을 두드리고,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것이라며 버티고, 누나와 자잘한 일탈을 모색하며 조금 더 풍요로웠을지도 모를 나의 한때를.
책 속의 지연은 엄마와 할머니와 증조모를 거쳐 새비 아즈마이, 희자, 그리고 명숙 할머니의 삶을 통해 제 삶을 짚어간다. 그리고 말한다. 보이저 1호의 골든 레코드가 지구를 기록하듯이 인간의 삶도 레코드에 담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나는 지연이가 엄마와 할머니를 만나고 증조모와 새비 아즈마이와 희자와 명숙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 동안, 아빠의 누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누나가 없는 내 삶과 누나가 있는 삶을 잠시나마 마음에 기록했다.
누군가는 앞으로 좀 나아가자고, 과거는 그만 접어두자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책이 전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정답이 무엇인지, 사실 그런 게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추억은 비단 어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해서 과거는 미래에 반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내게는 돌아본 과거가 현재를 절감하게 했고 미래를 그려보게 했으니까.
그렇게, 밝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