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성도의 애착

# 예수의 능력으로

by 글탐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요 15:15)
우리가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자기희생의 최종 목표는 우리의 친구 되신 주님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예수님을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놓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 됩니다. 이때는 희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우리에게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희생은 성령의 사랑을 표현하는 열정이기 때문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희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는 경지.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인간인 이상 알아주길 바라고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남편의 생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원고료와 강의료를 받고, 그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돈을 남편의 생일을 위해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남편에게 줄 선물(현찰)과 작은 이벤트로 시부모님께 드릴 각각의 용돈 봉투를 마련했다.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나에게 장가까지 보내주시니 감사하다는 우스개 섞인

농담 반 진담 반 편지도 봉투 위에 써서 용돈을 드렸다.


'으음? 분명히 내가 번 돈으로 아껴서 드린 용돈인데... 시어머니와 시아버님의 시선이 남편을 향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아, 이건 내돈내용(내가 번 돈으로 내가 드리는 용돈)이라고요.

강력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분위기도 띄울 겸,


"어머니, 아버지! 이거... 제가 드리는 거예요. 시선을 절 보셔야 된다고요."


마음씨 좋으신 시부모님은 다행히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셨고

또 애써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며 고맙다고 하셨다.


"에구~ 너희 둘이 하나잖니"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아니요. 이건, 제가 드리는 거예요. 제가."


난,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아니, 강요했다.

한바탕 웃음소리가 방안을 메우며 다들 기뻐하시며 일단락되는 기쁨의 생일날이

되었지만 내심으로 내 마음에는 농담이 아닌 진심이 깔려 있었다.


'인정 욕구가 강한 나'가 여실히 드러나는 삶의 현장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두가 행복해 했다는 것!

하지만 반면, 나는 아직 멀었구나! 를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희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는 경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주님의 경지이다.

주님의 희생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시 40:8)


주님은 자기희생적 삶의 본이십니다.라는 오늘 묵상의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다.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이지만,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그저, 주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다.


오늘 아침부터 흥얼거리게 하시는 찬양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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