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쓴다.
브런치에 아버님과 추억이 담긴 글들을 읽다 보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져서 끄적거려 본다.
그동안 신장혈액투석으로 참으로 고단한 인생의 마무리였다.
병마가 짙어질수록 앙상하게 말라가셨고, 나중에는 호흡이 가쁘셔서 힘들어하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힘들어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으니
얼른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절실했다.
그렇게 나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아버님이 떠나간 자리!
천국 소망이 있는 나는 원래 죽음 앞에서 잘 울지 않는다.
친정아버지는 스무 살 때 예수님을 믿기 전에 돌아가셔서 천국 소망이 없을 때였고,
친정 엄마는 천국소망으로 가득했던 때라 눈물 없이 기쁨으로 천국환송예배를 잘 치렀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냐고?" 질문했을 때, 난 그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통에서 해방돼서 천국에 가셨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아버님의 죽음은 이상하게 달랐다.
유독 눈물이 많이 났다.
병원에 모시고 다닐 때도 많이 울었고,
장례식장에서도 많이 울었고,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님이 생각나서 울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우는 사람은 아닌데...'
우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그때, 알았다.
천국 소망이 있어도 슬플 수 있다는 것을!
천국 소망이 있어도 그리울 수 있다는 것을!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움이 더 짙어진다는 것을!
시아버님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버님을 '아버지'라 불렀다.
친정아버지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었다.
미웠던 때도 있었고, 감사했던 때도 있었고,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불렀을 때, 아버님과 단 둘이 방을 얻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다정한 나와 아버님을 보고, 친정아버지냐 부동산 아저씨가 물어올 정도였다.
병원에서 의사와 상담할 때도, 친정아버지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 아버님은 다정했고, 때로는 친구 같았다.
나한테 상처가 되는 말도 가끔씩 하셔서 미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용서했고, 서로를 용납했다.
그렇게 낯선 이에서 시작됐던 아버님과 나는 점점 가족이 되어갔다.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많이 나는 걸까?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서 천국에 가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좀 더 건강하시게 사시다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천국과 지욱의 경계선도 마찬가지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처럼 불지옥에 간 부자가 물 한 모금만 찍어 달라고 해도
그 간절한 부탁을 그 경계선에서 갈리어진 사람들은 들어줄 수 없다.
누군가의 죽음, 이별은 슬프고 아프다.
하지만 성숙을 맞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아버님을 떠나보내며,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맞이한다.
있을 때 잘하자!
정말 많이 사랑하자!